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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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61)
 123. 짓밟히는 붙박이 돌이 되어…

 12ㆍ12 신군부 쿠데타의 언론에 대한 가혹 행위는 이승만 정부나 유신정권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에는 네컷만화에 대한 시시비비가 생기면 김성환 선생님 개인의 문제로 보는데 그쳤지만, 신군부는 개인이 아닌 언론사 전체를 잡고 흔들어댔다.

 그래서 언론사의 통폐합이란 핑계로 골치 아픈 중견 언론사를 폐업시키고 저명한 신문사의 기자들은 몽땅 해고했다. 동아일보에서도 20명이 해고됐고, 선생님도 그에 속했다.

 신문은 사전에 검열을 받아야 했으며 검열에 통과한 기사라도 인쇄하기 전 조판에서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마저 지워 버렸다.

 그래서 독자들은 군데군데 빈칸으로 남아있는 신문을 읽곤 했다. 이런 행위가 계속되자 외신에까지 한국의 언론 탄압에 대해 말이 나왔다. 그 무렵 미국의 저명한 언론과 전두환 장군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기자가 “무슨 이유로 기자를 해고했나”하는 질문에, 전두환이 “그들은 부정부패와 반정부 사건에 연류돼 해고했다”고 답했다. 그에 기자는 다시 “그렇다면 만화가는 무슨 이유로 해고 시켰나”하고 질문했다. 이에 전두환 장군은 마땅한 답을 못하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그때 질문의 ‘만화가’가 동아일보 네컷만화의 작가인 것을 알고는 김성환 선생님의 복귀를 명령한다.

 며칠 후 김성환 선생님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출근해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된다. 그러나 사정이 전과는 달랐다.

 선생님은 신군부의 감찰대상 제1호로 지정되어 원고가 그려질 때마다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전의 정부에서는 신문이 나오고 난 후 사고가 터졌지만, 이제는 신문이 나오기 전에 문제의 작품이 삭제되고는 했다.

 그러니 어떤 날은 서너 번 고쳐서 통과할 때도 있고, 검열에 통과한 후 인쇄할 즈음에 다시 찾아와 수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작품이 아예 신문에 게재되지 않았다.

 그 정도이니 선생님은 할 수 없이 작품 내용을 일상생활의 유머 중심으로 이어 나갔다. 그러나 피해망상증의 검열관은 유머 속에 무슨 속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바람이 부는 장면에는 “왜 바람이 부나”하고 따졌고 강아지가 나오면 “왜 강아지를 그렸나”하고 따졌다.

 그러니 ‘고바우 영감’에는 날카로움이나 예리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독자들 사이엔 “김성환이 변했다”, “김성환이 죽고 다른 사람이 그린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한다.

 그런 지경인데도 검열관은 아예 연재를 포기하게 하기 위해 선생님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선생님의 옆집에 거처를 정한 검열관은 밤이 되어 잘 시간이 되면 기차 소리, 싸우는 소리, 둔탁한 기계 소리 등을 녹음해 옆집의 김성환 선생님이 들릴 정도로 크게 틀어 놓았다. 그것 뿐 아니라 세숫대야 같은 것을 두들겨 선생님을 괴롭혔다.

 선생님은 그 소리에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그 때문에 며칠씩 작품 제작을 못하는 날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마다 외신이나 독자들이 고바우를 찾아대니, 검열관들도 못 할 노릇이었다. 김성환 선생님은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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