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生簿(살생부)
殺生簿(살생부)
  • 송종복
  • 승인 2014.06.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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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 경남향토사연구회/회장
 殺:살 - 죽이다, 生:생 - 살리다, 簿:부 - 문서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을 구별해 미리 작성해 놓았다가 때가 오면 처형시키는 것인데, 요즘에는 직장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퇴출시키느냐에 주로 사용한다.

 사람을 죽이거나 살릴 사람의 이름을 미리적어 놓은 명부를 살생부(殺生簿: hit list) 또는 흑명단(黑名單: Black list)이라고도 한다. 최초의 `살생부`는 한명희가 기록한 것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기 위해 세종ㆍ문종 때부터 원로 신하들을 제거(살생)하기 위해 적은 것을 최초로 본다. 즉 한명회가 경덕궁지기에 38세로 임명되고, 다음해인 1453년에 일어난 수양대군의 `쿠데타`인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경복궁에서 生과 死의 입장권인 `살생부`를 들고 정계에 등장했다.

 당시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인물과, 도움이 되는 인물을 가려 죽일 자와 살릴 자를 구분한 살생부를 작성해 수양대군에게 바쳤다. 수양대군은 살생부에 따라 육진을 설치해 여진족의 노략질을 막았던 좌의정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판 등 살부(殺簿)에 포함된 대신들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이들이 안평대군(수양대군의 동생)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워 참살시켰다.

 반면에 신숙주 등은 생부(生簿)에 포함돼 목숨을 부지하고 세조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한다. 이어서 수양대군은 단종을 영월로 귀향 보내고 세조로 등극한다. 이에 `살생부`를 작성한 한명회는 일등공신이 된다. 이와 같이 살생부는 원래 한명회가 만든 것으로 돼 있는데, 요즘 사극에는 연개소문, 견훤, 왕식렴, 태종 등이 `살생부`를 써먹은 적이 많다. 광복 후 백범 김구선생은 극악한 친일인사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형해야 된다고 살생부를 주장했다. 이어서 임시정부는 일제치하 친일부역자 263명의 `살생부명단`을 작성한 바도 있다.

 종래의 살생부는 생사(生死)에 달렸지만, 요즘 살생부는 직장의 퇴출을 두고 주로 말을 한다. 제헌국회이후 역대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많은 `살생부`를 들먹였다. 즉 새마을운동, 정풍운동, 정의구현, 혁신운동 개혁운동, 구조차원 등 많은 정책을 쓰다가 정권말기에는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이번 박근혜정부에서는 개조내각(改造內閣)을 세워 그동안 부정부패, 부조리, 비리, 관행, 비정상 등을 바로 잡겠다고 숫돌에 칼을 갈고 있지만 칼날을 언제쯤 쓸 수 있을지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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