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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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8)
 그때 선생님이 다락에 숨어서 그린 캐릭터는 약 300개가 된다. 이때 모아둔 캐릭터는 후일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을 주게 되는데 선생님의 대표 캐릭터인 고바우도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궁핍하고 불편한 날은 길지 않았다. 곧 인민군들은 도망가고 서울은 수복돼 국군과 유엔군이 입성한다. 인민군 치하에서 부역한 미술가들은 유엔군에게 끌려가 수난을 받게 되지만, 김성환 선생님은 온전했다.

 121. 종군 화가 시절

 선생님은 지인의 소개로 국방부 정훈국 미술 대대에 근무하게 된다. 그곳은 한국 화단의 중진들로 구성돼 주로 계몽 그림이나 선전 전단지를 그리는 대대였다. 김성환 선생님은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당당히 그곳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주간 ‘만화승리’에는 연재를, ‘육군화보’에는 그림도 그리고 종종 편집일을 맡기도 했다.

 국군들이 북진할 적에는 같이 압록강까지 진군하며 잔혹한 현장 곳곳을 그림으로 그렸고 국군의 의기양양한 모습도 그렸다.

 또 1ㆍ4 후퇴가 시작되면서 피난민과 어울려 그들을 그리곤 했다. 그중 기관차 지붕 위에 매달려 가는 피난민을 그린 그림은 인물 87명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선생님은 엄마를 잃고 울고 있는 아이, 길거리에 쓰러져 죽은 양민들…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순간을 한 점 한 점 그려냈다.

 먼 훗날 이 그림들이 전시됐는데, 기차 위에 타고 있는 피난민 그림을 본 어느 할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했다. 기자가 사연을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저 기차 위에 그려진 사람이 나 같아서 그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환도 후의 서울 청계천은 이북에서 밀려온 피난민들이 모여서 엉성하게 움막을 짓고 기거하기 시작했다.

 김성환 선생님에게는 무질서하고 궁핍한 청계천의 판자촌,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군상들의 의지와 희망을 보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 장면들을 거침없이 스케치했다.

 그 시절 서울 사람들의 생활은 궁핍 바로 그 자체였다. 길거리에서 편지 봉투에 쌀을 담아 팔고 사가는 사람들, 군용 시계를 파는 대학 교수님, 시장에서 군복을 탈색하고 염색해 정장으로 고쳐 입는 모습. 남산 위 판자촌에는 남루한 무명옷에 고무신을 신고 아이를 들쳐멘 아낙, 낡은 국밥집 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손님, 옹기종기 모여 설탕 과자 뽑기를 하는 아이들, 지게에 기대고 낮잠을 자는 지게꾼 등 모든 것들이 선생님에게는 소재거리였다.

 한 번은 선생님이 대구 동촌에서 남루한 잡부들과 여관방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문득 천장을 보았을 때 수많은 반딧불이가 보여 너무 신기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천장이 구멍이 나서 보이는 밤하늘의 별이었다.

 김성환 선생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똑바로 박힌 눈에 입을 야무지게 다물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차돌 같다.

 그런 차돌 같은 성품이었기에 6ㆍ25 전쟁 시절 어려운 종군 화가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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