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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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7)
 그러던 중 ‘연합신문’이라는 신문이 나왔는데, 종이가 질이 좋아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만화가 없었다. 김성환은 그 신문에 자기 만화를 게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신문팔이 학생에게 내가 만화를 그려볼 테니 연합신문에 좀 보내달라고 청을 했고 학생은 흔쾌히 승낙했다.

 김성환은 네컷만화를 그려 학생에게 보냈고 어떤 경로로 신문사에 전달됐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계기로 연합신문에 김성환 선생님의 첫 작품인 ‘엉터구리’가 연재된다. 선생님이 17살 때다.

 작품이 신문에 실리게 되자, 연합신문사에서는 학비를 대준다는 조건으로 정식으로 원고 청탁을 해온다. 선생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래서 몇 번 월급을 받고 원고를 보냈는데,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연재가 중단되고 만다. 선생님은 이제 활동을 못 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연합신문에 보낸 원고 중에 아직 신문에 게재되지 않은 작품이 다른 잡지사에 게재된 것이다. 김성환 선생님은 그곳으로 찾아가서 다시 원고를 그리게 된다. 그것뿐 아니라 김용환 선생님이 편집장으로 있는 ‘만화뉴스’에서 월급을 1만 원이나 준다며 원고 청탁을 해왔다. 그 돈으로 하숙비는 물론 어려운 식구들의 생활비도 지원할 수 있었다.

 120. 적 치하의 서울

 겨우 생활이 안정된 것 같았는데, 6ㆍ25 전쟁이 터지고 나라가 엉망이 되어 버린다. 피난 시기를 놓친 선생님은 서울에 남게 되지만 생활이 어려워졌다. 갈 곳 없는 처지가 된 김성환 선생님은 혹시나 하고 만화뉴스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다행히 그곳엔 김용환 편집장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생활이 어려우니 밀린 월급을 달라고 했지만, 편집장은 전쟁통이라 회사에 돈이 없다며 생활이 어려우면 ‘조선미술동맹’이라는 곳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가 시키는 대로 조선미술동맹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화가들이 이승만을 때려잡는 것, 미국인을 혼쭐내는 것, 김일성이 탱크를 타고 서울로 입성하는 것 따위를 그리고 있었다. 그곳의 책임자는 김성환 선생님에게 여기 와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리고 식량도 조금 건네주었다.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헛약속을 하고 식량만 얻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산당이 싫었다. 아버지 김동순을 부추겨서 만주 땅을 못 팔게 했던 일 등 그들의 말은 모두 허황한 것 같아서다. 그래서 그 조선미술동맹에서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숙집 다락방에 숨어버린다.

 한 번은 인민군들이 하숙집까지 몰려왔지만, 다락에 숨은 김성환 선생님을 찾지 못하고 가 버렸다. 김성환은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만약 나가서 인민군들에게 잡히면 총살을 당하거나 끌려갈게 뻔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락방에 숨어 생활하면서도 틈틈이 만화 주인공을 만들어 모았고, 사정을 봐서 잠시라도 밖으로 나서면 인민군 치하의 거리를 스케치했다. 그때 그린 작품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물취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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