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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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5)
 118. 귀농 조합

 독립투사 김동순의 아들로 태어난 김성환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타고났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연필이나 만년필로 방바닥에 낙서를 했고 방은 늘 지저분했다.

 출소한 김동순은 독립운동을 다시 하자니 동료들하고 뜻이 맞지 않았고, 사업을 하자니 일본 경찰의 사찰 대상이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6살이 될 무렵에 김동순은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기로 한다.

 그 당시는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만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의 밀명을 받고 조선으로 밀파되는 의사들이 많아 압록강을 넘는 기차는 늘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김동순은 위조 통행증을 만들어 일본 헌병을 속이고 압록강을 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자리 잡은 곳이 길림성의 ‘돈하’라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산지보다 평지가 많아 농경지를 개간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으로 이주를 온 조선인이 꽤 많았다. 그들도 밭을 개간했는데, 김동순도 그들과 함께 나대지를 개간한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중국인 원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들에게는 쓸모없는 땅인데도 남이 한다니까 배가 아픈 것이다.

 반대에 부딪히자 김동순은 힘을 얻기 위해 조선인을 모아 귀농 조합을 만들고 자기는 지부장을 맡는다.

 조합을 만들어 운영하자 그제야 원주민들의 반발이 많이 수그러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길림성에 상주해 있던 일본인 관청에 가서 귀농 조합 승인까지 받아낸다. 그러니 아무리 원주민들이라도 승인까지 받은 집단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김동순은 일본 관청에서 귀농 조합 승인을 받은 것에 대해 해방 후에 독립운동을 한 업적이 희석되기도 했다.

 개간 사업은 순조로워 김동순은 재산을 늘렸고, 만주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게 된다. 아들 김성환은 잘 자라서 길림6고(지금의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김동순은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늘 조국의 광복이었다. 광복이 되면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위해 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꿈은 이뤄졌다.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에게 항복했고 조국은 해방된다. 김동순은 너무나 가슴이 벅찼다. 청년 시절부터 그렇게 바랐던 광복이 아닌가.

 같이 조국에서 넘어온 이주민 귀농 조합원들은 여태껏 개간한 땅을 값싸게 팔아 버리고, 만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조국으로 떠났다.

 김동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만 문제가 생긴다.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자들이 그에게 접근해 이렇게 부추긴다. “조국에 들어가면 가지고 간 재산을 다 뺏긴다”, “돈을 많이 가진 자는 몰살시킨다.”

 이 사실을 들은 김동순은 마음이 흔들린다. 조국의 해방이 이런 것인가. 개인의 재산을 빼앗고 죽이기까지 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이 생긴 김동순은 땅을 만주에 두고 귀국하기로 한다.

 조국의 형편을 보고 난 후에 다시 들어와서 땅을 팔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전 재산을 모두 만주에 남겨둔 채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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