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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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 수뇌와 친일파 거두 등 7개의 집단을 가살한다’, ‘조선총독부와 경찰서 등 5개의 건물을 파괴한다’는 공약을 세우고 1919년 중국 길림성에서 조직된 그들은 조선으로 침투해 그곳에서 의열단을 조직했고 밀양ㆍ진영 폭탄 반입사건,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 상하이 황포탄 의거 등 그 기세가 대단했다.

 이때 개성에서 후일 김성환 선생님의 아버지가 될 김동순 청년에게 중국에서 밀파된 김상옥이라는 분이 찾아온다.

 김상옥은 3ㆍ1 운동 때 일본 순사가 조선인 여학생을 때리는 걸 보고 분노해 그 순사를 때려눕히고 칼을 빼앗아 도망쳤다. 그 칼은 아직도 독립기념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김상옥은 그때부터 가업인 상점을 동생에게 맡기고 대일본 저항 단체인 혁신단을 만들어 반일 운동을 했다.

 그중 하나인 지하신문 ‘혁신공보’로 얼마간 투옥 생활을 하게 됐고, 석방된 후에는 만주로 가서 의열단에 가입했다. 또 조선 내에 의열단을 조직하기 위해 밀파된 의사이다.

 김성환 선생님의 아버지인 김동순과 김상옥은 의기투합해 조선 반도에서 활약하는 의열단을 만든다. 단장은 김상옥이고 부단장은 김동순이 되어 하부 조직원으로 10여 명을 두었다. 이들은 곧 활동을 개시했고 친일파 여럿을 응징했다. 그리고 자금을 모아 상하이로 보내기도 했다.

 1923년에는 미국 의원단이 내한했는데, 그 당시 치안이 느슨한 틈을 타 암살을 기도한다.

 서울의 모 경찰서에 친일 거두 가네마루(가명)가 경찰서에서 밀담을 마치고 순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나오는 순간, 김동순 등이 준비한 권총과 폭약으로 그를 응징했다. 총알은 그의 어깨를 관통했지만 사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들이 던진 폭약으로 일본 순사들이 부상을 입고 화염에 휩싸이는 틈을 타 도주에 성공한 후, 일본 경찰서와 헌병대에서는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 와중에도 의열단은 쉬지 않고 활동했다. 한 번은 서대문에 있는 밀사를 만나러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이들을 잡기 위해 서울시내 곳곳에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라 목숨을 걸고 가야 했다.

 그래서 김동순과 김상옥은 서로가 50m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거리를 두고 가면 한사람이라도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단장인 김동순이 앞장섰고, 단장 김상옥은 50m 후방에서 길을 걸었다. 그때 덕수궁 돌담 아래서 거지들이 3~4명 앉아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김동순이 아무 생각 없이 그들 앞을 지나는 순간 거지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를 덮쳤다. 거지들은 변장한 일본 형사들이었다. 앞에서 걷던 김동순이 잡히자 뒤에 따라오던 김상옥은 그대로 도망을 쳤다.

 김동순은 그때 잡혀 10년이나 옥살이를 했고, 김상옥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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