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6.1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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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50)
 젊었을 적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서울 신림동, 제기동, 홍대 입구 그리고 인천, 멀게는 부산까지 격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다섯 개의 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니 한눈팔 사이 없이 늘 일에 파묻혀 살았고, 한 번씩 정신을 차리고 보면 몇 해가 훌쩍 지나있었다.

 나는 희아가 운봉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희아의 공연 날짜와 장소를 알게 되면 운봉을 꼭 만나러 갈 것이라고 벼르고 있었다. 그에게 어떻게 희아를 키웠고 피아노를 가르쳤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희아 이야기를 만화와 만화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나는 희아의 연주회 포스터를 보게 되고, 날짜와 장소를 알아냈다.

 장소는 서초동 교육문화회관이었다. 나는 그날 일과를 대충 마치고 늦지 않게 학원을 나와 전철을 타고 서초역에서 버스로 교육문화 회관으로 향했다.

 강당에는 이미 막이 올라있었고, 순서를 거쳐 희아가 등장했다. 희아가 무대로 나오자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희아는 무대가 익숙한 듯 박수에 가벼운 답례를 하면서 무릎 아래가 없는 다리로 조심스레 걸어 무대 중앙으로 나왔고, 보조대에 의지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희아는 네 개의 손가락으로 정말 수준 높은 곡을 연주했다.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열 개의 손가락에 노련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다.

 얼마나 연습을 했길래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 궁금증은 더해갔다.

 연주가 끝나자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온 강단을 가득 채웠고 다시 몇 곡을 더 연주하고 나서야 공연이 끝났다.

 드디어 관중들이 공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을 때, 나는 스태프을 찾아가 “희아와 부모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잠시 후 희아 엄마인 듯한 분과 희아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희아 엄마에게 “운봉과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친구”라고 소개하고 “운봉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희아 엄마는 뜻밖의 말을 한다. 운봉이 몇 달 전에 타계했다는 것이었다. 이게 또 무슨 말인가, 운봉은 나를 종종 놀라게 한다. 불과 얼마 전에 TV에서 모습을 보았는데….

 고생고생하다가 이제 희아와 작은 보람도 느끼며 살 수 있었는데, 결국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말다니 정말 아쉬움만 남는다.

 운봉의 비보를 안은 채 나는 희아에게 “나는 네 아빠와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란다”하면서 희아를 안고 번쩍 들었다. 그런데 희아는 생각밖에 무거웠다. 희아 엄마는 “선생님 희아가 그리 보여도 무거워요. 어서 내려놓으셔요”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운봉 대신 희아 엄마와 몇 차례 어울렸다. 한 번은 유학 준비 중인 우리 아들 기둥이를 희아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114. 희아의 회상

 희아 엄마와 나는 한 번씩 만나 어울렸다.

 그녀는 장미꽃처럼 화려한 미인은 아니지만, 가냘픈 몸매에 수수한 미인이며 늘 양보하는 그런 박애 정신이 몸에 밴 그런 분이었다.

 희아 엄마는 희아의 대한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자란 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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