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5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29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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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43)
 108. 눈물의 병문안

 1968년 1월 공비 사건은 나에게 큰 비운을 안겨줬다.

 첫 번째는 수색 30사단에 근무하던 나의 친형인 최화조 하사가 정월 대보름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걸어서 부대로 귀대했는데, 그 뒷날 알 수 없는 사고로 전사한 것이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평생 형을 그리며 살아갔다.

 그리고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운봉이 자하문 전투에서 지프차 전복 사고로 허리를 다쳐 평생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나는 형의 사고로 슬픈 시기에 운봉의 사고 소식을 듣고 비탄을 했다. 그리고 몇달 후 삼천포에 들린 나는 운봉이 입원한 진주 육군 병원을 찾았다.

 깨끗한 병원에 들어서 안내 데스크를 거쳐 운봉이의 병실을 찾았다.

 운봉이는 해맑은 미소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반긴다. 운봉이는 건강한 구리빛이 아닌 하얗고 파릿한 혈색을 띄우고 있었다. 서로 웃음으로 시작한 상면은 반가운 대화를 끊임 없이 쏟아냈다.

 나에게도 그렇지만, 운봉이에게는 어릴 적 추억은 평생을 잊지 못할 기억인 것이다.

 운봉은 친구들 하나 하나씩 상기시키며 추억을 늘어 놓는다. 각산에 놀러 갔던 일이며 튜브에 5~6명이 매달려 노산에서 목섬으로 건너간 이야기, 특히 보고싶다는 소년은 자기 옆집에 사는 명식이를 뽑는다. 명식이는 약간 아둔한 아이로서 한 번은 나에게 밉보여 골목대장 팀들이 왕따를 시켜버린 적이 있었다. 농협 앞 나무에 종이로 만든 명식이 형상을 걸어 놓고 놀려대다가 명식이가 나오자 내가 몇대 때렸는데, 그 때문에 화가난 명식이 어머니가 온 동네 아이들 집을 찾아 다니면서 부모들에게 항의를 하고, 제일 마지막에는 우리 집까지 와서 우리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고 간 적도 있었다.

 운봉과 나는 그 사건을 펼쳐 놓고 명식이가 없는 상태에서 명식이에게 미안한 일이라며 사과했다.

 또 운봉은 나에 대한 추억을 나에게 털어 놓았다 “웬만큼 싸움하는 아이들도 다들 내 주먹 앞에서는 몇 대 맞고 떨어졌는데, 부진이 너는 끝까지 덤벼서 내가 당황했다”고 말했다.

 둘이 웃으며 지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평생을 앉아서 살아가야할 중환자의 모습이 아니고, 곧 완쾌돼 걸어서 병원 밖으로 나갈 것 같은 환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운봉인 내가 슬픈 기색을 띨까봐 일부러 아무렇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으로는 얼마나 자기 처지가 원망스러웠을까…. 그렇게 둘이서 한바탕 추억에 잠겨 있다가 나는 운봉이의 미소를 뒤로 하고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병원의 넓은 마당을 지나 정문을 향하는 나는 고개를 돌려 운봉의 병실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운봉이가 이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번 나온 눈물은 왜 그런지 자꾸만 흐르고 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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