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2:53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2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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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42)
 1961년 나는 만화를 그리겠다고 서울로 올라왔고, 운봉이는 군인이 되겠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부 후보생으로 지원해 군에 입대하게 된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들 밑에서 스토리와 데생을 해주며 생활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자작도 하면서 서대문구 불광동 덕박골에서 5~6년째 지내고 있었다.

 그 때가 5ㆍ16군사정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이 5개년 사업계획을 수립, 이행하면서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용트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김일성 정부는 커져가는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1968년 1월 북한군 제124부대 소속 김신조 외 30명을 남한에 기습 침투시킨다.

 17일 23시 도강한 무장 공비들은 파평산 초리골에서 1차 숙식을 하고 19일 나무꾼 4명을 만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어 주게 된다. 이 나무꾼들이 귀가해 경찰서에 신고함으로써 공비 침투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군경이 그들을 소탕하러 출동했지만, 얼마나 산을 잘타는지 그들은 벌써 군경이 예측한 지점을 통과한 후였다.

 공비들은 대담했다. 이들은 계급장이 없는 군복을 입고 이열 종대로 열을 맞춰 당당히 입성했다. 가다가 검문에 걸리면 “훈련 후 귀대하는 국군 방첩대 소속이다”라고 말했다. 공비들은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고, 곧 청와대는 쑥대밭이 될 위기에 몰리게 됐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하문 앞에서 이들의 정체가 발각돼 공비들과 경찰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교전으로 경찰병력을 지휘하던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서장이 순직했다. 사태가 위급해 졌다. 그때 또 청와대를 호위하던 수도경비사령부의 30대대 전두환 대대장이 민첩하게 부대를 동원해 청와대 자하문 쪽으로 급파된다.

 이때 이 부대 소속의 중위였던 운봉이는 세검정 고갯길로 지프차를 타고 소대원을 이끌고 자하문 고개를 급히 돌진했다. 앞쪽 산등선에서는 경찰과 공비들의 총격전이 대단했다.

 총소리는 연달아 이어졌고 한 번씩 총알이 차를 향해 날아들었다. 힘겹게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고갯길에 도달할 무렵 날아드는 총알에 충격을 받은 운전병이 운전대를 잘못 비틀어 그만 지프차가 오솔길을 벗어나 골짜기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이 사고로 운봉이는 허리를 크게 다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침투한 31명의 공비들 중에 1명은 생포되고 2명은 북한으로 복귀하게 된다. 복귀된 공비 중 한 명인 박재경은 2000년에 대장 계급장을 달고 김용순 당 중앙 비서를 동행하고 서울에 온 적이 있다.

 6ㆍ25전쟁 이후 동족은 1968년 1월 무장 공비 사건뿐만 아니라, 아직도 원수가 되어 서로 허점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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