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23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27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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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41)
 객지에서 돈이 없어 낭패를 당할 판국인데 하늘이 도와주신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크게 먹고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니, 만약 돈을 써도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고 나중에 주인이 나타나면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머니에게 얻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예술제 구경도 다니고 그 다음 날 친구 운봉이를 만나 재밌게 놀고 삼천포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즐거웠냐고 물어보길래, 나는 이것저것 예술제를 구경한 이야기를 해주고, 마지막으로 내가 모르는 돈에 대한 생각이 났다. 어머니에게 “엄마, 내가 돈을 다 써버렸는데, 다시 그 돈이 내 주머니에 생겨났어, 정말 신기하지? 예수님이 돈을 만들어 주셨을까?”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 돈은 니가 예술제 가기 전에 옆집 아주머니가 너에게 준 돈이야, 너 몰래 네 호주머니에 넣어준 거야”하시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푼 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 전날 옆집에서 홍보 그림을 그려주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내 몸을 쓰다듬었던 것이 몰래 돈을 내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큰돈을 주시다니…. 참 고마운 아주머니다. 그날 내가 그 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그것마저 야바위 아저씨에게 잃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107. 비운의 골목대장

 이 말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1953년 여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여름, 상업은행 옆 넓은 집에서 농협 동네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처음 밖으로 나갔을 때 만난 용맹한 소년 이운봉을 말한다.

 운봉과 나는 무려 7년 정도,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 그리고 처음 만들어진 골목대장 팀의 멤버는 내가 삼천포를 떠날 때까지 80% 정도 그대로 있었으니, 그 동네는 정말 터줏대감들만 모여 살던 동네였다.

 운봉이는 의리의 소년이었다. 우리 팀에게는 헌신적이었지만 자신의 판단에 벗어나면 상대가 누구든 과감히 척결했다.

 어느 휴일 각산으로 가기로 약속한 날, 자기 생일이라 도시락 10개를 싸온다고 장담해놓고 어머니에게 보채다가 집에서 쫓겨난 사건, 수창의원 담벼락에 올라타고 놀다가 원장님이 “위험하니 내려와!”라며 호통치자 혀를 날름거리며 약을 올렸던 일, 상이용사들이 자기 집에 자주 온다고 상이용사의 지팡이를 부러트린 일 등 운봉의 일화는 끝이 없다.

 특히 예술제에서 만난 운봉은 촉석루까지 가서 강가 바위에 올라 나에게 “이곳은 논개와 적장들이 놀던 곳”, “여기는 논개가 적장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끼고 물에 빠져 죽은 곳”이라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고, 그 후 구경도 하고 저녁에는 내가 묵고 있는 친척 집까지 바래다주었던 나에게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다.

 그때 내가 살던 동네 친구 중에는 장성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학 교수도 되고 재벌 회사에 간부도 됐는데 나는 그들만큼 운봉이도 정치가나 사업가가 될 줄 알았고, 또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거침없던 운봉, 어떤 현실 앞에도 물러서지 않던 당당한 운봉. 그러나 운봉이는 모든 사람이 기대했던 그 정반대의 불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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