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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국 그리고 안라국
다라국 그리고 안라국
  • 안명영
  • 승인 2014.05.21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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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 반성중학교장
 ◇ 합천박물관 가는 길

 진주와 고령 길 4차선 도로를 타고 합천 길목에서 내려 쌍책으로 향하다. 가파른 절벽 아래 도로에 접어들어 피암 터널 앞에서 `합천박물관 17km`의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낙민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고갯길을 넘자 거대한 분지의 초계가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을 따라 내륙 깊숙이 왜적 출몰이 빈번해 도원수부가 설치됐고, 이순신 백의종군로 종점이다.

 아막재를 넘어야 쌍책이다. 고개 마루를 지나면 황강과 면소재지가 보이고 둘레가 온통 산이다. 그중 유난히 봉곳한 봉우리가 시선을 끈다. 눈길을 낮추면 오서마을이다. 烏西라, 까마귀가 서쪽으로 날았다! 까마귀가 보통 새이던가. 우선 글자 생성부터 특이하다. 까마귀는 털과 눈이 검어 `鳥`의 눈 부분에 해당하는 `一` 획을 빼어 `烏`로 됐다.

 폐교된 쌍책중을 지나 직진하다 보면 좌측 능선을 따라 고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에서 2천여 개의 옥구슬과 갈돌이 나와 옥전(玉田)고분이라 불린다. 다른 고분에서 용봉문환두대도 4자루가 출토됐는데 이는 특이하게 아파트 식으로 시신을 매장했다는 증거이다. 합천박물관은 옥전고분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뾰족한 삼각형의 부소산 아래, 多羅里가 있어 일본서기나 양직공도에 기록된 가야 다라국의 거주지로 추정되고 일본에서 제철을 의미하는 多多羅의 근원지이다. 금관가야가 멸망하자 한 무리가 북서쪽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황강으로 뱃머리를 돌려 강 언덕에 도달해 돛을 내리고 오서마을이 됐다. 일본과 빈번한 왕래가 있었는지 조상 나라로 성묘하러 오는 일본인 탐방객이 매년 증가 하고 있다.

 ◇ 함안박물관 가는 길

 함안 중앙도로를 접어들어 여항산을 향해 이동하면 우측 능선에 고분들이 나열돼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한참 가다가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고분군을 끼고 돌면 함안박물관이다. 불꽃문양의 굽다리 접시를 첨성대 크기로 세웠다.

 입구 연못 속에 연꽃이 만발했는데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는 색깔과 화려하지 않지만 예사롭지 않다. 성산산성 발굴 조사 중에 연씨를 수습해 나이를 검색했는데 700년이라 지극한 정성으로 환생시켰으니 `아라 홍련`이라 불릴만하다.

 엉뚱하게 광개토대왕비를 볼 수 있다. 무슨 사연으로 만주에 있는 비를 이곳으로 옮겼을까? 놀람을 진정시키려는 듯 바로 옆에 별도의 안내문에 비문 중에서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을 확대하고 `안라국 사람으로 구성된 수비병`으로 해석해 안라국의 존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광개토대왕비에 있었다.

 안라국(아라가야)은 남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일본과 교류가 빈번했고 금관가야 멸망 후에는 중심 역할을 했다. 국내 최초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마갑, 일본 스에키 토기에 영향을 미친 토기 등을 전시한다.

 다라국과 안라국은 강을 끼며 고분들이 능선에 걸쳐있고 아래에 박물관이 위치한다. 또 금관가야의 멸망과 연관이 많았고 앞선 문물을 고대 일본에 전래했다.

 `과거에 눈을 감은 자는 현재에도 장님이 된다`고 했다. 일부 일본 정치인의 위안부, 독도 등에 대한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는 국민들의 바른 역사 이해를 바탕으로 화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자주 만나야 한다. 일본인과 의미 있는 만남과 학생들의 역사 현장체험교육을 위해 지역 박물관 역할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다라국과 안라국의 국명에 `∼라국`이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제주도의 고대 왕국은 탐라국으로 모두 첫 글자의 多, 安, 耽만 다르다. `∼羅國`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를 학생에게 뭐라고 설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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