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0:57 (화)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19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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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35)
 103. 마지막 작품집

 선생님은 실로 한국 만화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초창기 한국 사회의 정치 풍자 만화로, 아동용 단행본 만화의 기틀로, 학원 잡지의 창간 멤버로, 대한만화가혐회 창설 멤버로, 그리고 자유의 벗에서 강하고도 소탈한 국민을 그린 것… 이렇게 선생님은 한국 만화계의 대들보 역할을 하신 것이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떠난 후의 행적은 세세히 전해지지 않았다. 단지 ‘후지산 밑의 아름다운 별장에서 일본 여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만 종종 들려올 뿐이었다. 일본에서의 삶은 은둔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마도 정든 조국에서는 산하와 민초, 역사를 그릴 적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신명이 났는데, 이국땅에서는 이국의 산하를 그릴 자신이 없으셨던 것. 또 얼마 후에는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을 오간다는 소문도 돌았다.

 나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주간 경향에서 김래성 선생님의 소설 청춘극장을 만화화한 ‘하얀그림자’ 연재를 마치고 출판사 어문각에서 발행하는 클로버문고에서 작품을 하게 되었다.

 그때 클로버문고는 작품이 일급이어야 출판을 하지만 원고료는 일급이 아니었다. 그래서 클로버문고의 많은 작품들은 다른 잡지에서 연재한 작품의 재판이다. 그리고 이따금 순수 창작물도 출판됐는데, 그 작가들은 원고료를 초월한 초인의 능력을 발휘하던 분들이다.

 나는 낮은 원고료로 작품을 해야 하기에 일본 만화에 그림을 본따 그리고 내용만 구상해서 원고를 제작해 나갔다.

 1983년 클로버문고의 사주는 출판업을 접으려 슬슬 폐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지막까지 클로버문고를 지키던 김충만(가명) 부장이 “최 선생 어문각은 얼마 후 폐간될 것이요. 그래서 내가 출판사를 만들어 미국에 계신 김용환 선생님의 작품을 받아 출판하게 되었소. 최 선생 다음 작품은 내가 창업한 출판사로 넘겨 주시오”하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미국에 계시는 김용환 선생님의 작품을 출판하는 것에 대해 신기했고, 또 그런 김 부장이 대단해 보였다.

 그 뒤 나는 원고 한 권을 들고 나는 김 부장이 오라고 한 어느 행사장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김용환 선생님의 출판 기념회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김용환 선생님은 여기저기 오가면서 손님을 맞고 계셨다. 그 모습이 내가 본 선생님의 마지막이다.

 그렇게 김용환 선생님의 그림집은 출판됐지만, 김 부장의 계획은 빗나갔다. 조국을 떠난 후의 김용환 선생님의 작품은 한국에서의 작품과 거리가 멀었다.

 그 옛날 자유의 벗과 학원에서 그려내던 웅장하고 화려하고 섬세한 한국민의 생활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김충만 부장의 출판사 융성에서 출간된 김용환 선생님의 작품집 ‘코주부 표랑기’는 기대 이하로 판매 실적이 부진했다.

 그 이후 선생님은 거처를 미국으로 완전히 옮기고, 1998년 86세 나이로 쓸쓸히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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