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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타이완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타이완
  • 도용복
  • 승인 2014.05.15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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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ㆍ茶 보다 인심 더 오래 남아
일출ㆍ오룡차, 아리산이 주는 최고 선물
▲ 민박집 주인의 고산식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안개 속을 걷는 아리산 산책은 일품이다.
 타이완 여행 첫째 날. 타이완 북부도시 타오위안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간 곳은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부귀도원(富貴陶園)이란 명판이 걸린 입구 좌우로 아이들의 생활이 담긴 청동상이 재미있게 늘어서 있다. 실내로 들어서자 넓게 배치된 테이블 사이로 전시된 그림과 조각들에 넋을 잃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식당인지 갤러리인지 순간 의심이 들었다.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테이블에 차례로 나오는 접시에 담긴 요리와 디저트는 이것이 음식인지 미술 작품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왔지만 음식을 먹는 내도록 멋진 작품들을 구경하는, 음악으로 치자면 기승전결이 뚜렷한 한편의 오페라를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멋진 레스토랑과 최고의 만찬은 비싼 돈을 지불하면 어느 대도시에서도 만나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행가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삼십대 중반의 단아한 부지배인이 자리에 합석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음식과 예술을 접목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생활에 예술이 베어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운영방침이라고. 식사를 마치고 더 많은 예술 작품을 보고 싶은 고객을 위해 별도의 갤러리도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식당이 예술과 연관이 돼 있기에 직원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든 종업원의 센스와 매너도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

 타이완의 자연이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인 일출을 보기 위해 아리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해발 3천m가 넘는 산들이 258개나 무리지어 있어 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타이완에서도 아리산은 그 풍경과 2천년이 넘는 삼나무 무리의 신비로움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해발 2천~2천600m 높이의 산들이 18개가 모여 이룬 산맥을 통칭해 아리산이라고 부른다. 아리산은 차로 오르는 길부터 장관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산림과 변화무쌍한 날씨에 어느새 사라졌다 나타나는 짙은 안개, 영화적인 연출로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무대를 만들어낸다.

 숙소까지 가는 중 들른 차밭. 해발 1천300m 고산지역에 형성돼 있는 계단식 차밭은 층층이 이어진 규모도 규모지만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에 가려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리산에 차 밭이 많은 이유는 해발이 높고 구름과 안개가 많으며 일교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차를 아리산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 일 년 내내 서늘한 기후가 차나무의 성장을 더디게 해 찻잎을 연하게 만든다. 사시사철 수확하는 차마다 맛이 차이가 나지만 그 중에서도 봄에 수확하는 찻잎을 최고로 친다.

▲ 타이완 북쪽 해안의 야류해상국립공원에는 자연이 만든 신비한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최고의 오룡차를 생산하는 곳인지라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인지 물어보니 주인 아들이 직접 안내를 해준다. 먼저 찻잎을 수확하면 따온 찻잎을 햇볕에서 30분 정도 말리고, 이후에는 실내에서 12~16시간 정도를 말린다. 건조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고온의 온도에 덖어내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에는 수십 차례 잎을 문지르고 비비는 과정을 반복한 후 또 다시 건조한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는데, 차가 만들어 지는 과정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그 긴 공정을 일일이 안내를 하면서 시범을 보이는 주인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베푸는 친절치고는 너무나도 지극정성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출발하는 산림기차를 타기 위해서 다원을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숙박을 했다. 금융권 공무원 출신의 듬직한 풍모의 주인과 스포츠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했던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이곳은 남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동창이었던 주인 내외가 학창시절 단체로 여행을 왔다가 이곳의 풍경과 자연에 반한 안주인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도 덩달아 일생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제일 아끼고 간직하며 살고픈 여자는 지금의 부인이라니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식사 준비해 주고 방을 내어주고 나면 주인과 별로 대면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이곳은 다르다. 식사를 하면서 찻잔이 비는 족족 새 차를 따라 주고 귀한 곳에서 온 손님이라 독한 고량주를 꺼내와 극진하게 대접을 한다. 주거니 받거니 술이 몇 순배 돌다가 오래된 친구인 양 아예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판도 벌어진다.

 다음 날 아침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보러 가는 것을 하루 연기하자 주인 내외의 대접이 또 시작되었다. 어제 술이 좀 과하시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이 손님이 드시는 양에 따라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평소 술을 즐기는 것은 아니나 손님이 원하는 양에 따라 마시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권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슬비가 내리는 아리산 산책을 나선 길에 주인의 안내가 따른다. 길가 나무에 열려 있는 과일과 숲 속 고산식물들의 이름과 효능을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비가 촉촉이 내릴 때 숲에서 나오는 공기가 더 맑으며 건강에도 훨씬 좋다고 한다. 사업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제일이니까 이곳에서 좋은 공기 많이 취하시고 한국에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빈다는 덕담. 코끝이 찡한 여운을 남겼다.

 나는 타이완의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할 줄은 몰랐다. 타이완을 몇 번 여행하면서 타이베이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의례히 관광객에게 하는 친절로 생각했다. 몇 가지의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여행 중 내가 만난 사람들은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친절한 사람들, 정이 많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 보았지만, 타이완 사람들에겐 가슴으로 다가오는 끈끈함이 있었다. 내가 만난 개개인들로 보자면 이 사람들은 문화인이며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아리산의 멋진 일출보다, 최고로 치는 오룡차의 맛보다 더욱 오래도록 타이완을 기억하고 다시 여행하고픈 나라로 만드는 것은 타이완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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