征韓論(정한론)
征韓論(정한론)
  • 송종복
  • 승인 2014.05.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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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征:정 -정벌하다, 韓:한 - 나라, 論:론 - 말하다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이 정한론(정조론)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시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일본이 침략의 흉계를 꾸밀 때 마다 이 ‘정한론’을 인용하고 있다.

 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고사기>, <일본서기>에 고대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에 임나일본부(김해)를 지배했다는 근거로 1860년대에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조선’이지 ‘한국’은 아니었다. 왜 ‘韓’을 쓰는가 하면, 처음에는 ‘정조론(征朝論)’인데 ‘조(朝)’가 일본의 조정(朝廷: 일본 천황)을 뜻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여겨져서 ‘정한론(征韓論)’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일본이 과거 조선을 조(朝)와 선(鮮) 또는 한(韓: 三韓)을 지방 명칭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메이지정권(1868)은 조선에 신정부 출범을 알리고자 국교를 원했으나 외교 문서가 에도시대와 다르다고 거부했다. 당시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일본의 메이지 3년(1870) 2월과 9월에 온 대사를 거부하였고, 또 메이지 5년(1872) 1월과 9월에도 거부했다. 이에 분개한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정한론’을 들먹이며, 1811년(순조 11)에 보낸 조선통신사를 대마도에서 일을 보고 돌아가게 하였으며, 또한 일인들의 조선통신사와 접촉도 막았다. 이후부터 정한론이 대두하자 드디어 1875년 운요호사건을 일으켰다.

 메이지정권 이전, 요시다 쇼인(1830~1859)의 <유수록>에 의하면 ‘일본은 무력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대포를 갖춰, 홋카이도(蝦夷)를 개척하고 봉건제후를 임명해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카나와(琉球)와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臺灣)과 필리핀 루손(呂宋)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그의 직접제자인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에 의해서 실행돼, 1876년 병자수교부터 조선을 침탈하고는 1910년에 드디어 조선을 강제병탄 했다. 이후 일제는 35년간 조선인을 억압 및 수탈로 괴롭혔다.

 한ㆍ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시 반감이 앞선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사실로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인 ‘신공황후설’(신라왕 석우로가 야마토군에게 포박당해 해안가로 끌려가 목이 날라 감)을 들먹이고, 있지도 않았던 ‘한반도 남부경략설’과 있을 수도 없는 ‘임나일본부설’(야마토 왜가 가야[김해]에 일본부(日本府)룰 두어 지배했다는 설)을 예나 지금이나 철썩 같이 믿고 아직도 교육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ㆍ일간의 미래나, 동아시아 발전으로 보아 불행한 일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한국대통령이 일본의 허락도 없이 독도를 방문했다고 법정에 제소하는가 하면, 일본역사에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우리는 지금 역사교육에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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