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09:39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08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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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28)
 한 상품을 개발해 3대 김원일 사장까지 이어온 ‘사쿠라 보시’ 집의 일년 매출은 3억 정도로 궁핍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아 가업 중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이기도 하다.

 나는 만화를 그리러 서울에 와서도 일년에 한 두 번씩 고향 삼천포에 내려갔다.

 풋내기 만화가로 힘겹게 생활했지만, 고향에 내려오면 마냥 좋았다. 할머니도 만나고 친구들도 정겹다. 그리고 사쿠라 보시 집을 찾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사쿠라 보시의 맛 때문도 있지만 넷째 딸 금선이 소식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대방 넘어가는 언덕길 옆에 커다란 나무 아래 우물이 있고, 우물가를 지나 언덕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쿠라 보시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을 찾아 들어가면 인자한 금선이 어머니가 말린 사쿠라 보시 박스 안을 정돈하고 계시다가 나를 반긴다. 이 집 분들은 우리 어버지와 친분이 있어 나를 잘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인 부부는 딸들을 지극히 사랑해 그런지 사쿠라 보시를 정리하는 마루 벽 위에 팔공주의 사진을 줄을 맞춰 걸어 놓았다. 모두 엄마를 닮았는지, 하나같이 미인들이다.

 금선이 어머니와 다정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중에서 금선이와 관련되는 일을 자주 묻고는 했다. 마치 예비 사위를 대하는 모습 같았다. 나는 그런 다정함에 자세를 조심스럽게 가다듬었다. 그때는 금선이 어머니는 금선이가 마산의 언니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삼천포 내려오면 사쿠라 보시 집을 들르고 했다. 그러던 중 금선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 우리집 주소를 알고 동생 안희에게로 소식이 왔다.

 금선이와 안희는 소식이 주고받다가 어느 날 안희는 정색을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오빠, 금선이가 우리 집에 와서 살고 싶다는데… 서울로 불러올릴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질문에 또 한 번 고민에 빠진다. 그 자체로 나무랄 것 없는 여인이지만, 그래도 내가 앞뒤를 재지 않고 오라 할 정도로 푹 빠진 상대는 아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재본다. 가진 것 없는 작가, 불투명한 생활, 노모와 5명의 어린 여동생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남의 식구를 데려다 놓을 형편이 못되었다. 가난한 만화작가에게는 마음 놓고 결혼할 권리도 없었다.

 나는 쉽게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지만, 금선이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입을 뗀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미적거린다는 답이 금선이에게로 내려가자, 그 몇 달 후에 금선이가 결혼했다는 연락이 오게 된다.

 금선이는 그때 어느 한 남자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나에게 최후통첩을 넣어보고, 성사가 안될 땐 정해 놓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았다. 나는 섭섭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금선이가 잘 살아줬으면 하고 빌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일년이 약간 넘었을 무렵. 들려온 금선이의 소식에 나는 아연실색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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