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1:38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5.07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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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27)
 사쿠라 보시는 1935년께 창업자 김용현 옹이 학꽁치를 말려 상품으로 내어 놓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설탕이 워낙 비싸 단맛을 내지 않았지만, 해방이 되면서 조청을 첨가하기 시작했고 상품이 잘 팔리자 설탕을 첨가하게 됐다.

 1950년대 사쿠라 보시는 가격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보다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해 생산품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내가 중학생 무렵에 이 집을 칠공주 집이라 칭했는데, 부부는 끝까지 아들을 갖기 위해 또 자식을 낳았는데, 역시나 딸이었다.

 이제는 팔공주 집이 된 것이다. 참 하늘도 원망스럽지….

 보통 가정이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 뒤 부부는 또 아이를 낳아 아홉 번째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2대째 김득주 사장이다.

 8여 1남 중 셋째 딸 김화자는 나와 동창인데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못했다. 그 당시는 같은 반이라도 남녀가 유별해 친하게 않은 여학생의 가정사는 모르고 지냈기에 화자가 그 집 딸이라는 것은 2000년 무렵 중년이 되어 동창회 때 오랜만에 본 화자를 사회자가 ‘사쿠라 보시 집의 딸’이라고 소개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넷째 딸 금선이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 까닭은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인 안희와 같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선이는 상당히 미인에다 성격도 활발해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좋았다. 또 삼천포 또래 남학생들은 인기가 있어 몇몇 남학생은 금선이와 사귀고 싶어 줄을 서고 있었다.

 특히 내 친구 철공소 집의 윤철(가명)이는 금선이를 흠모한 나머지 틈만 나면 금선이 집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금선이가 나오면 말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금선이는 윤철이에게 핀잔을 주고 했다.

 그런 식으로 금선이를 만나러 집까지 오는 학생들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이 집에 딸 금선이뿐 아니라 다른 자매를 사모하는 학생들도 한 번씩 찾아왔기 때문에 사쿠라 보시 집에는 늘 그 집 딸들을 따라다니는 남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성격이 밝고 꾸밈이 없는 금선이, 예쁜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귀엽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그런 금선이는 한 번씩 동생 안희를 만나러 우리 집에 오면 나를 슬쩍슬쩍 봤는데 그럴적마다 나는 금선이의 그런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둘이 하는 농담이 나에게까지 들렸는데 그 농담이 걸작들이었다.

 금선이: 안희야 나 너희 집에 시집오면 안 되겠나?

 안희: 좋지, 나랑 평생같이 살 수 있으니 너무 좋다.

 안희: (안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가만있어봐라, 그러면 네가 우리 새언니 되는 게 아닌가. 너 오빠 믿고 까불면 큰일인데.

 금선이: 아니야. 네가 나에게 시누 노릇 단단히 할까봐 내가 겁난다.

 안희: 그런가, 그렇구나. 그때 난 너를 무지하게 구박할 거다.

 하면서 둘이서 깔깔대고 웃고는 했다. 나도 금선이를 한 번씩 생각해 봤지만, 딱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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