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8:1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2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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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22)
 93. 미국에서의 작가 생활

 김산호 선생님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부산일보의 시사만화, 만화세계에서 연재도 하다가 대여점 출판사 ‘부엉이 시리즈’에서 출간된 라이파이로 히트를 친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미국행을 결심한 1966년, 미국에 이민 가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시기였는데도 선생님은 상업 미술로 미국행에 성공한다.

 가기 전에 여태껏 돈을 벌던 만화 필명 ‘김산호’는 친한 친구에게 맡기면서 그 대가로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해결해주기로 약속했는데, 이 친구가 선생님이 떠난 후에 얼마간 필명을 사용하며 선생님의 약속을 지켰지만, 출판사와 거래를 하다 보니 꼭 ‘김산호’라는 필명이 아니라도 충분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지 필명을 ‘백호’라고 바꾼다. 그 후 만화 대여점에서는 다시는 김산호 이름의 책은 볼 수 없게 된다.

 미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영화 사업도 그렇지만 특히 만화는 유색인종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고, 또 신티게이트(영업을 위한 조합) 조직이 잘되어 있어 이민을 온 타국인에게는 만화 창작이란 높은 절벽 너머의 세상이었다.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은 선생님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둣가에 가서 흑인이나 멕시칸들 틈에 끼여 짐을 나르기도 하고. 빌딩에 페인트 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틈틈이 그린 작품을 가지고 출판사를 들락거렸지만, 미국 만화는 캐릭터들이 모두 완벽한 인체 데생을 근거로 하기에 인체를 비틀리게 그리는 선생님의 캐릭터로는 힘들었다.

 미국의 만화계는 고질적인 신티게이트 조직으로 말미 삼아 만화 발전이 무딘 사회이다. 한 번 히트한 작품의 작가는 신티게이트의 일원이 되면서, 작품은 출판사 관리하에 한 캐릭터의 작품을 원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스토리를 받아 그리는 식이다.

 슈퍼맨이라는 한 캐릭터가 많은 작가에 의해 긴 세월 동안 그려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러니 미국 만화계는 캐릭터가 다양하지 못하고 신인들이 등용하기에 까다롭고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산호 선생님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였다. 굳건히 작품을 그리고 도전하다 보니 길이 열린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중 찰튼코믹스에서 ‘샤이언 키드’라는 작품에 산호 선생님이 스토리를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샤이언 키드는 서부극인이었고 그 다음에는 ‘고스트 틀리’라는 작품에서 괴기 만화도 그리신다.

 그렇게 스토리를 받아 그린 작품들은 미국뿐 아니라 주한 미군 부대를 통해 한국에도 건너와 명동에 있던 외국 서점에서 팔리곤 했다.

 그런 생활을 해오던 선생님에게 창작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1973년 미국 영화계에서 ‘정무문’ 등 히트작을 내고 있던 이소룡이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이소룡 영화는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에 히트하면서 세계는 ‘오리엔탈 붐’이 일어나게 된다.

 그때를 기해 미국 만화계에서는 동양적인 작품을 추구하면서 동양인 만화가 김산호 선생님에게 창작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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