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0:10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2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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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21)
 ‘라이파이’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벌써 첫 작품이 출간된지 5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그 당시 어린 독자들은 중년이 된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팬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라이파이가 히트를 할 때쯤 나라는 5ㆍ16군사정변이 일어났고 대여점만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서슬이 시퍼런 정국 속에서도, 라이파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리고 산호 선생님은 능력있는 만화가 몇몇을 모아 자기 작품을 제작하게 했는데 그 대표적인 분이 김 찬 선생님이었다. 또 백호, 용호라는 선생님도 후에 자작을 하며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산호 선생님은 갑자기 미국행을 택하시게 된다. 그것은 선생님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잘잘못은 자신만이 알겠지만, 한국 만화계에서 본다면 크나큰 손실인 것이다.

 당시 미국의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일본의 아톰과 같이 한국의 영웅 라이파이가 될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작품을 포기한 것이다.

 무슨 이유였을까?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라이파이를 출간해 크게 히트시킨 것이었고 미국행을 선택하신 무렵도 20대 중반이었다. 그러니 허구한 세월을 보장받고 있는 선생님은 젊은 날 한 번의 히트작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넓은 세상에서 그보다 더 큰 작품, 인기와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왜 선생님은 미국행을 택하셨을까? 그것은 앞서 말한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창작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데 있다.

 5ㆍ16군사정변에서 만화는 억압의 대상이어서 서점용은 벌써 말살시켰고, 하나 남은 대여점 만화는 ‘자율위원회’란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기구를 두고 원고가 제작되면 출판하기도 전에 심의해 원고 중간중간을 가위질하고는 했다.

 또 라이파이의 경우는 자율위원회에서 사소한 검열로 가위질을 당하는 것은 견뎠지만, 작품에서 펄럭이는 깃발에 별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 “이 깃발은 인공기를 묘사한 것이 아니냐”고 트집을 잡는 바람에 선생님은 한국에서는 도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2014년 현재, 라이파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작품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 현시대에 시원하고 유연하고 신비스러운 그때의 작품이 그대로 출판된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20년 만에 귀국한 산호 선생님도 옛 작품을 재연해 보려 하지만 될 수가 없다.

 안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라이파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제는 아주 오래된 낡은 제목이고, 두 번째는 그 옛날 작품처럼 날렵한 그림을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산호 선생님은 이미 작품의 감각을 잃어버리셨고, 다른 작가들도 그만한 유연하고 활동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파이 재연 과정에서 날고 있는 라이파이 캐릭터에 투박한 색채를 입히는 것이, 마치 100m 달리기 선수가 가죽점퍼를 입고 뛰는 것으로 보여진다.

 아쉬운 라이파이, 그래서 나는 만약에 주인공 이름을 바꾸고 색채는 연하게 해서 아주 노련한 작가가 신작 개념으로 재연해 본다면 그 옛날의 작품이 살아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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