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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묻어있는 명소 그곳을 걸으며…-구 진영역~봉하마을
추억이 묻어있는 명소 그곳을 걸으며…-구 진영역~봉하마을
  • 이동근
  • 승인 2014.04.24 22:3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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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기에 길을 떠나는게 아닐까…
▲ 70년이라는 시간을 등지고 사라져간 구 진영역의 경전선 철길.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대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세월호의 여파가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에게도 큰 슬픔으로 전해져오는 지금, 내게도 무력함을 안겨주는 날들의 연속인 4월이다. 언론에서 떠도는 각종 유언비어에 국민들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비신사적인 행태에 하루에도 각종 뉴스에는 온갖 가십거리의 기사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슬픈 사실보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흡사, 여당과 야당을 비롯하여 정치적 논리로 끌고 가고 있다는 현실이 더 안타깝고 비통하다는 생각에 연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도 들고, 하루에도 뉴스를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며 혼자 절망하고 좌절하며 애가 닳는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무기력한 날들 속에 사람이 태어나 평생을 두 발로 서서 걸으며 나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 곧 길이 된다는 의미도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길 바랄 것이며 그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필자 역시 글과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의미가 있고 감동이 있는 여행을 내가 먼저 경험할 수 없다면 그 감동은 나의 글과 사진을 보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우선시 하고 있다.

▲ 진영읍을 지나 걷다보면 흩날리는 갈대들이 슬픔을 반기는 듯하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세월호 안에 살아남아 있을 생존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은 바람이 가장 클 것이다. 필자는 ‘운명’ 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알게 해준 ‘그’가 그리운 요즘이었다. 정치 라는 그 무게감을 떠나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시대는 저물어 버린 것일까? 야당, 여당이라는 정치적인 색을 띤 당을 떠나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시선은 한 장의 종이 마냥 가벼운 생각인 걸까?

 무언가라고 확신하기에는 ‘사람’이라는 이 단어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보인다.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 추구하는 일이라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미련을 두고,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지금 시점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었다.

 1905년 마산선 개통과 함께 개역했던 구 진영역에 닿았다. 현재의 역 건물은 1943년 일제강점기 말에 세워져 무려 7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2010년 12월 신경전선 개통으로 70년의 역사를 뒤로 한 체, 모든 열차의 운행이 정지되었으며. 구 진영역은 경전선역 중 가장 수요가 많은 역이었다. 진영 전통시장 건너편 도로 아래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아래 제법 너른 광장에 빨간 지붕. 구 진영역사(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145)의 판자로 거칠게 못질 되어 있는 벽면. 역명판 아래로 깨어진 유리창이 보인다. 오래 된 기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역시 흰색 판자로 사람의 출입을 막고 선 입구. 현재와 과거를 인위적으로 단절해 버린 듯한 기분에 한동안 그곳에 시간을 내어준다.

▲ 양지마을과 봉하마을을 알리는 이정표.
 유리창에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만이 걸려있을 뿐 아무런 장식과 집기 없는 건물 내부가 휑하다. 벽에 걸린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말에 시선을 거두고 돌아서는 찰나 승강장 출입구로 쓰였던 아치문을 휘감으며 활짝 피어있는 장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매표소도 승객도 없는 역사는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임을 감추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 이름을 단 최초의 역이 될 뻔했던 구 진영역의 승강장은 외로웠다.

 이제는 머물 수 없는 기차, 보내야 하는 것들에 시간을 쌓아 이야기를 만드는 역에서 나는 한동안 머물러 있다. 낡고 낡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에 누군가는 오랜 기억들을 꺼내보고 추억하려 애틋한 발걸음을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진영역을 지나 본산 입구 삼거리 앞으로 들어섰다. 봄과 겨울사이를 품고 있는듯한 논과 밭이 눈앞으로 펼쳐졌고 그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만이 쓸쓸한 여정을 반겨준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외롭지만 그는 그 길을 지날 때 페달을 저으며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할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 것만 상상에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를 찾아간다. 봉하마을로 들어서는 도로에 노란 바람개비가 늘어서 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적지 않은 인파들이 보인다. 노란 손수건을 걸어 찾아오는 사람을 반기듯 노란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를 반긴다.

 기념관 마당 벽면에 밀짚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그가 보인다. 농사짓는 나를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며 행복도 전염된다고 말하던 노무현.

 그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고 누구보다 평범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고 싶어 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상상하며 그 길을 걸어본다는 것은 길 위에 서보지 않은 이는 느끼지 못하는 희열이리라.

▲ 생각만으로도 아련해지는 그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이 올라앉아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너럭바위 묘역.

 묘역 가까운 유채밭에 수많은 노란 바람개비가 꽂혀 있고. 바람의 세기에 따라 제각기 돌고 있는 바람개비 꽃들을 배경으로 ‘바보’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희망이란 글자 앞에 서서 연설하던 그가 푸른 잔디 위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다. 뒤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손녀를 태우고 있다. 그의 일상적인 모습에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머물렀다.

 멀리 보이는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는 출발점에 있는 돌탑.

 그는 마지막으로 그 길을 오르는 것을 다짐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난한 여인이 구걸하여 석가에게 바친 등불에서 유래했다는 연등의 정성과 큰 돌 사이사이를 메운 공깃돌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풍경이다. 울창한 숲길 너른 바위 위에 오고 가는 이들이 하나씩 올려놓은 돌탑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보고 싶다는, 잊지 않겠다는 달리 표할 수 없는 마음을 내려놓은 흔적이리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여전히 가슴으로 전해지고 마음의 울림으로 추억되는 인간 노무현.

 그는 비록 함께 걸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언제까지나 행복한 사람일 것 이다.

 그의 진심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을 위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돌아보는 그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보’ 라 불리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수많은 덕목들 중 가장 기본적인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기본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봉하마을을 찾아가는 다양한 경로 중에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구 진영역에서 봉하마을까지를 선택한 것이 매우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객관적이어야 하는 생각들이 주관적인 생각으로 묻어나오는 것도 오늘은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풍경을 보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가장 행복한 여행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동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만이 더 많은 것들을 남긴다. 때때로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만들어져 있지 않은 지도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 또한 길을 나아가려는 여행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몫이다. 비록 그 길이 외롭고 가시밭길을 걷는 힘든 길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먼저 길을 개척해야 한다.

 필자는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가끔 들여다보며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없는 세상이라고 해서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고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바랬던 세상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는 것 또한 남겨진 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세월호에 남겨진 아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길을 걸었다. 분노하고 비통해하기보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몫을 해야 할 것 같다. 구 진영역에서 봉하마을까지는 6km 정도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

 풍경을 상상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걷다 보면 다양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는 동안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이승환 11집 Fall To Fly 수록곡) 란 노래만 들었다.

 그리고 봉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내가 길을 떠난 이유.

 당신이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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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주 2014-04-25 08:54:58
아마도... 간절히 평범한 사람이길 바랫던 노무현 대통령님께선..아마 하늘에서 내려보시면서 지금에 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비통해하실지도 모를일입니다..힘없는사람은 알면서도 당하고 알면서도 말못하는 지금에 현실적인 세상에 하늘에서 내려보시면서도 그분은 아마도 눈물을 흘리고 잇을지도 모를일입니다..세월호또한 펴보지도못하고 생을 다하지 못함에 진도바다엔 억울함과서러움이 영원히 서려잇을겁니다.

박 은정 2014-04-25 01:39:38
그분이계신곳에도지금의우리모습이비춰질까요?대통령이기보다는평범한한사람이길바랬던그분이참그리워집니다.작가님이걸었던그길을독자또한같이걷는것마냥아픔과기쁨을함께했던것같습니다.세월호에의해희생된아이들과유족들에게깊은애도를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