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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파미르 고원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파미르 고원
  • 도용복
  • 승인 2014.04.24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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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 ‘한 폭의 수묵화’
▲ 넓은 분지 너머 파미르의 설산이 보인다. 높은 봉우리에 구름이 내려 앉았다.
어려운 입산 허가ㆍ고산병에도 불구 산악인 몰려

 드디어 출발이다. 이른 아침부터 일행들이 분주하다. 이번 파미르 고원에서의 숙박은 모두 텐트에서 하는 탓에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동안 먹을 식량과 침구, 옷가지 등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커다란 카고백 두 개에 식량을 나눠 담고 개인용 방한복과 침낭 등은 배낭에 담아 놓고 보니 일곱 명 일행의 짐이 한가득이다.

 사실 이번 파미르 여행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세계의 지붕, 그 장엄한 위엄을 가리기 위함인 듯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는 시간이 일 년 중 7, 8월 겨우 두 달. 그나마 8월 말이 되면 눈폭풍이 시작돼 출입이 제한된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서파미르는 미리 키르기스스탄이나 타지키스탄 비자와 파미르 입산 신고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그 마저도 현지 여행사의 대행을 통하지 않으면 쉽지가 않은 터라 네 번의 시도 끝에 4년 만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같이 출발하게 된 일행들이 전문 산악인이 아닌지라 평균 고도 6천m에 이르는 파미르 트래킹은 고소증과 체력적인 부담으로 포기하고, 베이스캠프에서 머물면 옛 소련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피크레닌(7천134m) 등반의 전초기지인 캠프(4천200m)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출발한 차량은 내리 8시간을 달려 키르기스스탄의 국경 도시 오쉬에 도착했다. 7월의 뜨거운 태양과 사막기후의 건조함에다 우즈벡의 대부분의 차량이 에어컨이 없는 차량이라 장시간의 차량이동과 국경 통과에 이미 일행은 녹초가 됐다. 오쉬는 파미르 고원을 오르기 위한 출발의 기점이 되는 도시로 매년 이맘 때면 피크레닌을 오르기 위한 산악인들이 몰리는 곳이다.

 오쉬에서 일박 후 우리 일행을 태운 고물 승합차는 파미르로 출발했다. 가장 걱정하는 점이 고소증세. 이미 나는 네팔 히말라야와 페루의 쿠스코와 티티카카에서 고소증을 경험한 적이 있어 불안감이 더 했다. 히말라야에서는 5천200m에서 고소증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소증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이 높아지고 산소가 부족하면서 뇌와 혈액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증상. 심한 두통과 구토, 심하면 피를 쏟거나 실신을 하기도 하는데 처방이라는 것이 딱히 없어 증상이 심해지면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몸이 적응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완만한 경사로를 계속 오르자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강줄기가 있는 곳엔 유르트라고 부르는 유목민의 텐트가 드문드문 보인다. 가축의 먹이를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는 유목민인지라 살림살이는 궁색하다. 소와 양들은 풀을 찾아 초원으로 나가고 집 가까이에서 키우는 닭과 당나귀가 유르트를 지키고 있다. 천막 밑으로 따가운 햇살을 피해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아들 세 명을 키우고 있는 여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척박한 지역에 사는 만큼 생김새도 옷차림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사탕을 얻으러 다가온 아이들의 몸에선 시큼한 젖냄새가 묻어났고 땟국물로 얼룩진 옷차림과 햇살과 추위에 갈라진 아이들의 손등을 보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 같았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초원, 그곳에서 가축을 키우면서 조금은 부족하지만 자연과 함께 환한 미소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란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말젖을 짜서 만든 무크스라는 마유주와 우유를 개어 덩어리로 만든 치즈를 얻어먹고 다시 차는 다시 출발했다.

▲ 유목민의 거주지 유르트.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수목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해발 2천m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아예 나무가 보이질 않는다. 식재료로 가져갔던 진공 포장된 봉투들이 기압으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일행들은 계속 물을 마시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의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차가 도시를 출발한 지 6시간 만에 입산허가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입산신청을 해야 입산이 가능하다. 미리 준비한 입산허가서를 제출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너른 분지를 달린다. 멀리 우리가 가는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보인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햇볕이 쬐는데 봉우리 위에는 까만 먹구름이 내려앉아 눈을 뿌리고 있다.

 분지를 빠져나오면서 비포장도로로 차가 들어서자 뭐든 붙잡지 않고서는 제대로 앉아있기도 힘들 지경이다. 협곡을 타고 들어가는 차량을 따라 창밖에는 튤립과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진창길, 물길을 가리지 않고 고물차는 열심히 달린다. 베이스캠프가 가까워 오자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도 추워져 너도나도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저녁 6시가 돼서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무는 베이스캠프는 해발 3천800m. 미리 예약돼 있어서 우리가 머물 텐트가 마련돼 있었다. 흩뿌리는 빗발 때문에 서둘러 각자의 짐을 텐트로 옮기고 그제야 베이스캠프 주변을 둘러보았다.

 베이스캠프 주변으로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고 산봉우리마다 흰 눈을 이고 있다. 흐릿한 저녁 어스름 아래 멀리 보이는 산맥 위엔 내 키 높이에 맞춰 구름이 내려앉았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와 층을 지고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하얀 수염을 기른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다. 베이스캠프는 캠프 운영자가 머무는 유르트 한 채와 식당용도로 쓰이는 대형 텐트, 그리고 산악인들이 머무는 2인용 텐트 8개가 전부다.

 ‘드디어 파미르에 도착했구나’ 안도하며 자연이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조금씩 어지럼증이 오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다들 멀쩡한 것 같은데 나에게 고소증세가 가장 먼저 오는 것 같다. 서서히 오던 두통이 갑자기 심해진다. 두통과 겹쳐 갑자기 찾아온 어둠 사이로 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눈바람에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텐트로 들어가 가져간 겨울옷을 모두 껴입고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막으려고 깔개를 깔고 캠프 주인에게 이불까지 빌려 깔았지만 한기를 막을 수 없었다. 극심한 두통. 마치 쇠꼬챙이로 머릿속을 북북 긁어내는 느낌이다. 예전 히말라야에서의 증상보다 더 심한 듯 하다. 고소를 이기려고 물을 많이 마신 탓인지 기압 때문인지 소변도 자주 마려워 간이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호흡이 어려워 몇 발짝 걷기도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설사까지 만났다. 추위에 고소증, 거기다 배탈까지… 몇 번을 텐트를 들락날락 거리다 결국엔 탈진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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