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시민 여러분.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삼천포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삼천포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고 돈을 뺏긴 학생들입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힌 불량배들에게 복수하려고 무례를 범합니다. 그 원흉은 키가 크고 한쪽 눈이 찌푸려진 XX눈입니다. 여러분, 아무 일 없이 진주로 올라갈 테니 XX눈을 우리에게 데려다 주십시오.”
XX눈은 동철이 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형이 우리 점포 뒤에서 낯선 학생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그러나 나는 순하디순한 동철이 형이 그런 짓을 했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진주 학생들이 동철이 형의 이름도, 집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들이 동철이 형의 집을 알았더라면, 그날 그 집은 박살이 났을 것이다.
진주 학생들은 연거푸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삼천포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다. 어른들은 집안에서 꿈쩍도 않았고, 구경꾼이라 해도 나랑 아이들만 서너 명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삼천포는 공포의 분위기였다. 진주 학생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소란을 피웠지만, 기물 파손이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순진한 학생들이 몇 년간 쌓인 화풀이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입장에서 본다면, 그 사건은 완전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런 피해를 당했으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 해결될 사건인데, 그때 피해자 학생들은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그런 짓을 했을까. 그 시절은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시절이라서 그런가. 그때 진주 학생들은 두 시간가량 우리 동네를 소란에 휩싸이게 해놓고는 돌아갔다.
나는 그 사건의 원인부터 사건 발생까지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뒤처리는 삼천포 시청이나 경찰이 개입해 그들을 진정시켜 돌아가게 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실컷 분풀이를 하다가 분이 좀 풀리자 돌아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 며칠 후 나는 동철이 형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진주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남강을 중심으로 진주고등학교와 진주농고 학생들 간에 낫과 흉기를 들고 한바탕 혈전을 벌려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신문을 보고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또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알았지만, 지금은 그 수를 기억할 수가 없다. 그때 그 사건은 진주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다.
나는 그때 진주고등학교에 다니는 수창의원 손주 상호와 골목대장 팀에서 어울려 같이 놀았던 운봉이가 다치지 않았나 걱정했지만, 며칠 후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었다.
나는 진주 남강 사건을 보면서, 진주 학생들이 우리 삼천포를 습격했을 때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내 다리에서 투석전 끝내고 바로 진주 학생들이 진격할 때 삼천포 학생들이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혹은 삼천포 학생들이 더 많이 모여서 싸웠더라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던 분위기였다.
그 시절은 참 험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