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25 (금)
“안다”고 말해선 안 된다
“안다”고 말해선 안 된다
  • 조성돈
  • 승인 2014.04.21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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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오래 전, 스치듯 읽은 글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충격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떠나기는커녕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명료해져, 그의 말은 저술활동은 물론이고 내 삶을 근간하는 철학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언명의 주인공은 ‘레스티 킹’이다. 과문한 탓으로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여기저기 서핑 끝에 그가 상당한 작가라는 사실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레스티 킹’의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안다라고 말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으로 어떤 대상도, 엄밀하게는 모를 수밖에 없는 이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대상이 물질이든, 생명이든, 아니면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든,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그 어떠한 것도 종국에는 부분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즉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단순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어란 말인가? 호기심 많은 나의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의 언명에 나타난 사상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전해오는 동양사상의 한 부분이며, 수많은 철학자들이 제기해 온, 묵은 명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 표현의 단순성과 명료성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을 대표하는 양자이론을 접하면서, 나는 ‘레스티 킹’의 언명이 점차 구체화됐다. 물질의 근원은 입자와 파동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파동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증거만 보여줄 뿐, 결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파동은 인간에게 호기심을 허락한 신의 마지막 커튼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관찰할 수 없다면 과학에서 쫓겨나는 법이지만, 그러나 양자론에서의 파동은 과학 밖으로 내 보낼 수가 없었다. 입자와 함께 그것은 물질을 이루는 근원적 기초일뿐 아니라, 그 존재와 운동양식을 떠나서는 그 어떤 자연과학의 이론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는 휴대폰이나 냉장고는 물론 핵발전소나 우주선도 가능하지가 않다. 그러나 파동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소위 물리학에서의 ‘해석문제’는 방기됐다.

 여기서 양자론은 언급하는 것은 ‘레스티 킹’의 언명이 단지 교훈적 경구나 철학적 명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내용으로 하는 현대과학의 본질과 관련을 가지는 까닭이다. 플랑크상수를 제외한다면, 양자론에서는 완벽하게 틀리거나 맞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인과관계조차 양자론에서는 모호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은 난처한 상황을 맞고 있다. 새로운 법칙은 나오지 않고 새로운 물질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제 과학은 갈 데까지 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과학의 종말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지난 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이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사실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과학의 위기에도 과학자들은 과학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이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난국에 역사가나 철학자들이 나서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그들 역시 소극적이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안개 속으로 물러섰다. 과학지식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에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로 고뇌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지조차 망각해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내 눈앞에 전개되는 어떠한 대상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회의의 수렁에 빠지거나, 반대로 매우 바빠질 것이다. 나는 과학자들이 바빠지길 기대한다.

 사물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진정한 이해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암울한 메시지는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는 안다라고 말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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