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4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20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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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16)
 어머니는 “너 호주머니 좀 보자”하시면서 내 호주머니를 뒤진다. 물건을 팔고 금고 대신 내 호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다 꺼내는 것이다. 어머니가 내 호주머니를 뒤질 땐 처음에는 순순히 있다가 마지막쯤 나는 앓는 소리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어머니 손이 내 마지막 호주머니에 못 들어 오게 방어를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몇 번 시도하다가 그냥 봐주신다.

 그렇게 한두 번 하면 성문사 만화를 살 수 있었다. 나는 박광현 선생님의 ‘임꺽정’도 사고, 박기당 선생님의 ‘손오공’도 사고는 했다. 또 남은 돈으로 골목대장 팀 몇 명을 불러다 각산 밑 개울가 다리 옆에 있는 젠샤이(팥과 설탕을 넣어 오랫동안 끓인 단팥죽)집에 들어가 젠샤이를 먹으면서 친목을 더욱 돈독하게 했다.

 90. 귀신들의 놀이터

 남일대 해수욕장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 귀신들도 살았다. 귀신들은 해가 지고 으슥해지면, 술 취한 사람이나 겁많은 사람들을 골라 장난을 친다.

 보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한 아저씨가 매점 안에 있는 나더러 수영장 서쪽에 있는 공동묘지를 바라보며 “학생, 저기 묘지에 혼불이 왔다 갔다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묘지 쪽을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이상하다,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데”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한 번은 해가 질 무렵에 형과 집으로 가기 위해 향촌 들판을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땅바닥에 뒹굴며 “아야, 아야, 이놈이 날 죽이려 한다. 누구 없소, 살려주시오”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귀신에게 홀려 혼이 나고 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귀신을 싫어하던 나는 그쪽으로는 무서워 가만히 서 있었는데, 형은 “기다리셔요”하면서 아저씨 쪽으로 뛰어간다. 나도 할 수 없이 형 뒤를 따라갔다.

 우리가 거의 다다랐을 때, 그 아저씨는 “어어, 저놈이 도망가네. 이보시오, 저놈 좀 붙들어요”하면서 우리보고 또 간청한다. 그러나 형과 내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인주 삼촌이 하는 말이, 술을 먹고 길을 잃어버렸는데, 지나가는 처녀가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인주 삼촌은 처녀가 가르쳐 준 대로 한참 가고 있다가 이상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시내에서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샛길 향촌 들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한 번은 아직 해가 지기에는 시간이 남았는데, 안개가 자욱하고 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황혼다방 영환이와 둘이서 쇠살로 만든 베우산을 쓰고 해수욕장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으슥한 날씨에 잔뜩 움츠리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산 꼭대기에서 불이 번쩍하더니 우산이 떨렸다. 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지만 놀란 우리는 우산을 집어 던지고 달려서 시내로 들어온 적이 있다.

 또 비가 부슬부슬 오는 해수욕장에 술에 취한 사람이 바다로 들어갔다가 죽어서 나오기도 했다. 해수욕장은 무덥고 화창하고 즐겁게 수영하는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씩은 심한 비바람으로 바다가 요동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온종일 쏟아지는 장대비에 찰랑대는 바다만 쳐다보며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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