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1:33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13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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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11)
 87. 성문사 전질 만화

 때는 1957년, 내가 중학생 때였는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진삼도로에 있는 서점 앞을 지나다가 거창한 만화를 보게 된다. 한 권이 아니라 작은 박스 안에 열권 정도가 들어있었고, 샘플 두 권 정도를 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나는 그 만화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표지가 양장이고 쪽수도 250쪽이 넘을 것 같았는데, 박기당, 박광현, 김종래 세분의 만화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추동식 선생님의 쿼바디스도 있었고, 이병주 선생님의 ‘삼국지’도 있었다.

 박기당 선생님의 작품으로는 손오공, 예수님이 있었고, 박광현 선생님 작품으로는 그림자 없는 복수, 임꺽정, 숙향전(제목이 분명치 않음)이 있었고, 김종래 선생님 작품으로는 숙향 낭자전(제목이 분명치 않음 ), 충신비사가 있었다. 당시 김정파 선생님의 ‘아 무정’이 그 전에 출간됐는데, 이 전질에서 재판돼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책 중에 신동우 선생님의 ‘삼총사’도 있었는데, 이 전질에 포함됐는지 기억이 안난다.

 신동우 선생님은 데뷔 때부터 마지막까지 만화체 만화만 고집해 그리셨는데, 이 삼총사에서는 완전한 삽화체로 그려져 있어 선생님은 삽화체로도 대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당시 그 책들의 한 권의 가격이 500환이었다. 지금 그 책이 신간으로 서점에 나왔다면 1~1만 2천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 정도이지만, 그때는 종이가 부족해 상대적으로 다른 물건보다 책 가격이 높을 때였다는 점을 따지면, 지금 돈으로 2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

 그 만화책들은 한국 역사상 출발부터 지금까지 나온 만화책 중 그림 실력이나, 내용이나, 책 제작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우수한 만화책들이다. 6ㆍ25전쟁이 끝난지 3~4년밖에 되지 않아 나라가 극도로 가난한 처지에서 그렇게 귀한 책을 한 권이 아니라 열권이 무더기로 출간됐다는 것은 한국 출판사에 기적이다.

 지금 도서 수집가 중에서는 그 만화 전질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출간된 도서 중에서 제일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나는 이 귀한 전질을 나중에 다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내 돈으로 사기도 했다. 그 책은 중학생 용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격이라, 나는 보통 때 같았으면 그런 돈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만화세계’는 저렴해 몇 달에 한 권 정도 사주셨지만, 이 비싼 책은 사주지 않을게 뻔해 말도 못 꺼냈다. 그런 내가 그 만화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기고, 한 권도 아니라 계속해서 여러 권을 사서 모으게 된다.

 내가 중학교 다니기 시작한 여름부터 어머니는 삼천포 남일대 해수욕장에 ‘남일대’ 점포를 운영하게 되고, 나는 어머니를 도와 그 점포에서 일을 봐주면서 수시로 돈을 삥땅해 그 비싼 성문사 만화책을 모은 것이다.

 성문사 사장 홍순풍 사장은 참 만화에 큰 업적을 남긴 분이시다. 문화 사업이란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데 큰 재산을 걸고 대모험을 한 것이다.

 그런 홍 사장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분이었다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화를 이해하고 핵심을 알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우선 만화가 중 최고의 실력자 박기당, 김종래, 박광현 선셍님을 스카우트하고 또 신예 추동식, 이병주 선생님까지 가세시켜 대원호텔 앞 건물 일층을 빌려 제작 사무실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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