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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10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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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10)
 86. 합동 출판사의 횡포

 합동 출판사의 횡포는 대단했다. 도전하는 출판사는 온갖 수단을 써서라도 무너트렸다. 무너진 출판사들은 자금ㆍ정신적으로 대단한 피해를 입었다.

 합동은 타 출판사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자기 일 외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가들도 피해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합동 출판사와 거래를 못 하는 작가들은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 당시 삽화 만화가로 실력이 좋았던 고유영 선생님은 합동과 거래가 중단되자, 원고를 팔 길이 없어 합동과 거래하고 있던 김기율 선생님에게 원고를 팔았다. 독자들은 만화를 보면서 누가 봐도 고유영 선생님의 그림인데 작가가 ‘김기율’로 되어 있어 의아해했다.

 당시의 합동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 부조리가 종종 신문에 올려지고 했는데, 그때 신문 지면에서는 합동 주주들의 회장인 이영래 씨를 ‘신촌 대통령’으로 소개했었다.

 그 무렵 내가 남산 밑의 국제 문고에 거래할 적인데, 그때 같이 일하던 만화가 선생님이 밤늦게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기에 이영래 회장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 대통령’하며 심하게 비판했는데, 포장마차 주인이 이 만화가 선생님이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줄 알고 경찰서에 신고를 해버렸다. 그것 때문에 그 선생님은 감옥에서 2년이나 넘게 옥살이를 했다. 참 그 시절은 앞도 뒤도 없던 시절이었다.

 1969년에는 우리나라 정계 거물인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금맥 캐기’에 도전한다. 그 당시 장기영 회장은 경제 부총리를 역임하면서 외국 차관을 유치킨 한국 경제의 거물이었다.

 합동은 이 한국의 경제 거물과 맞짱을 떠 6개월 만에 지분의 반을 한국일보에 넘겨주면서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때 한국일보 초장기 만화작가가 된다.

 박기당 선생님은 그 무렵, 합동의 주주 중 한 분인 윤동근 사장이 서점용 만화 출판사를 설립하고, 질 좋은 만화를 출판하면서 박기당 선생님에게 ‘성웅 이순신 장군’의 원고를 청탁하고 출판하게 되었는데, 이 성웅 이순신 만화를 보면 정말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박기당 선생님은 자신의 처지와는 무관하게 창작 생활을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 해나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타계하셨는데, 타계하실 무렵까지도 작품을 계속 하셨다. 그때 문하생 한 분은 정신적으로나 기억력이 쇠하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오래 살지 못하실 것을 예감했다고 한다.

 박기당 선생님은 그분의 말대로 만화계 거인이셨다. 데뷔 때부터 히트작을 출간하면서 일생에서 한 권도 소홀히 한 작품이 없다.

 그리고 무슨 이유로 합동의 주 멤버가 됐는지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만화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1950년대 중반, 황금 시절 꽃을 피운 세 분 주인공 중 한 분이신 선생님은 두 분을 일찍 보내시고 혼자 남아서 굳건히 황금 시절의 여운을 남기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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