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5:4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07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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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07)
 84. 지략가 박기당 선생님

 만화 황금시절, 만화 잡지 ‘만화세계’가 서점에서 히트하고 있을 무렵이다. 만화세계는 뒷면에 ‘독자 만화 모집’ 공고가 있었고 독자들이 만화를 그려 보내면 잘 그린 독자에게는 선물을 주고는 했다. 나도 검은 잉크와 펜을 사서 만화를 그려 만화세계 본사로 보내 ‘만화세계’를 한 권씩 공짜로 받아 보고는 했다. 공짜로 받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잡지에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던 중 또 다른 만화잡지가 나왔다. 책 이름은 ‘만화소년소녀’였다. 낯선 잡지에 신기해하며 나는 아버지에게 돈을 얻어 그 책을 사 보았다. 그 잡지에는 유명한 박광현 선생님과 또 내가 알만한 작가분들이 더러 있었고 처음 보는 만화 작가도 있었다.

 그분이 바로 박기당 선생님이었고, 바다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작품에 삼천포 앞바다가 나와서 더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박기당 선생님은 괴기스러운 이야기와 화풍으로 만화소년소녀뿐 아니라 만화세계에도 작품이 연재되면서 인기를 얻다가 그 다음 해에 우리나라 최고의 전질인 성문사 만화 전질 단행본 열권 중 세 권을 그려낼 정도로 최고의 작가가 된다.

 박기당 선생님은 1922년에 일본에서 태어나시고 성장한 분이다. 1946년 나라가 해방되면서 부산으로 왔다. 전쟁 때는 관공서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그림도 그리고, 부산 광복동에서 미군의 초상화도 그리고, 부산시민 극장에서 간판도 그리는 등 그림이라면 다재다능하신 분이었다.

 6ㆍ25전쟁 시절 박기당 선생님은 부산으로 피난 온 박광현 선생님을 만나 친해진다.

 그 후 상경한 선생님은 서울에 올라와 국도 극장에 간판을 그리시게 된다. 국도 극장 간판이라면 간판계에서도 최고의 실력자인 것이다.

 마침 박광현 선생님이 새로운 만화 잡지 출간을 준비하면서 박기당 선생님을 설득해 만화를 그리게 하신다. 박기당 선생님은 그전에도 성인 잡지 ‘야담’에 틈틈이 만화를 연재했지만, 굳이 생업은 아니었는데 이때 아예 전업으로 바꾸신 것이다.

 만화소년소녀에서 인기를 얻은 선생님은 곧 다른 출판사의 연재 청탁을 받으면서 인기 작가 반열이 오른다. 그쯤 선생님은 잠시 여유를 가지기 위해 조용한 부산 해운대로 내려가 ‘만리장성’ 원고를 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둑한 동백섬 해변길을 걷던 선생님은 길에서 불량배를 만나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한 젊은이가 나타나 위기에서 구해 준다. 이때 도와준 젊은이도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그때부터 선생님 화실에 자주 찾아오면서 만화를 알게 되고, 이후 만화가가 되는데 그분이 김기태 선생님이시다.

 박기당 선생님은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나라는 5ㆍ16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만화는 국가 정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만화 잡지와 서점용 단행본이 사라지게 된다.

 그때부터 만화 시장은 만화 대여점으로 국한된다. 박광현, 김종래, 박기당 선생님 세 분은 각각 자기 성격대로 큰 난파를 맞는다. 박광현 선생님은 새로운 질서에 융합하지 못하고 곧 침몰했고, 김종래 선생님은 화풍을 간결하게 정리해 다작의 파도를 어렵게 넘어가고, 박기당 선생님은 탁월한 전략으로 화풍을 간결하게 하고, 노련한 문하생들을 훈련시켜 데생과 펜터치를 시키며 다작의 경쟁을 거뜬히 헤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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