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4:26 (금)
고액 연봉 적정성 후폭풍
고액 연봉 적정성 후폭풍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4.04.06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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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정도전이라면 어떤 길을 택했을까? 옛날 권문세족과 같은 재벌오너란 이유로 경영 비리때문에 수감생활을, 또는 적자에도 40억~300억 원의 황제연봉을 챙겼다면 말이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 법에 따라 상장 대기업에서 고액(5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들의 개인별 보수가 공개된 후 ‘억’이 아니라 몇 십억, 몇 백억인 고액연봉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경제민주화의 재점화가 요구되는 것은 적정성 때문이다.

 또 삼성 이건희 회장ㆍ이재용 부회장과 다수의 재벌 오너들은 등기이사를 맡지 않아 연봉 공개 대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공개에서 제외된 미등기 임원에 대한 연봉공개 등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꼬리를 물고 눈총도 따갑다. 경제민주화의 재점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아무튼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부자를 질투, 시기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우리 속담이 이를 잘 말해 주는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이 있으면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의 현재 화폐 단위는 순 한글인 ‘원’이다. 하지만 1953년부터 1962년 화폐개혁 때까지는 ‘돌고 돈다는 뜻’인 ‘환’을 사용했다. 또 조선시대에는 떳떳할 ‘상’(常), 평평할 ‘평’(平), 통할 ‘통’(通), 보배 ‘보’(寶) 자(字)인 상평통보(常平通寶)란 엽전이 사용됐다. 누구나 이것만 있으면 반상(班常)의 구별 없이 떳떳하고 평등하게 널리 통용할 수 있는 보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야 돈이란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쓸 수 있으려면 돈은 돌아야 하지만 돈이 특수 (재벌)권력층으로만 쏠리니 ‘먹고 죽을 돈도 없는’ 서민들로서는 돌아 버릴 지경이다.

 물론 ‘소득 양극화’ 현상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소득의 양극화는 ‘먹고 죽을 돈도 없는’ 즉, (돈)씨가 말랐다는 지경이 아닌가. 이런 상태라면 경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을 일이다. 가진 자들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 전 세계 82개국 951개 도시에서 일어난 반 ‘월가(街)’시위도, 1920년대 미국 대공항원 원인도 소득양극화의 산물이 아닌가.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란 저서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소수의 부(富) 독점과 그에 따른 유효수요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국민총소득 중 상위 1%가 가져가는 몫이 23%를 넘었는데, 지금도 그 수준을 넘겨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은행 경영진의 고액연봉이 도마에 올랐다. 또 상장 대기업에서 고액(5억 원 이상)연봉을 받는 등기임원들의 개인별 보수 공개 후 ‘후폭풍’의 날선 여론이 사회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은 자못 심각함을 일깨우는 단초다. 주식회사와 보험, 복식부기 등을 발명, 인류역사에서 자본주의를 활짝 피게 한 네덜란드는 금융회사 임원의 보너스를 연봉의 20% 이내로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고액연봉에 따른 사회적 여론이 일어날 때면 시장자율성을 해친다는 반론이지만 소득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성장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불평등의 축소와 지속적인 성장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2011년 4월 IMF 보고서)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종업원ㆍ소액주주에겐 인색하기 짝이 없고 오너와 경영자에겐 과도한 황제연봉이 비일비재하다.

 개인별 임원 보수 공개를 의무화한 것은 경영 성과가 개별 임원의 보수에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따져 기업 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에 있다. 그런데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터무니없이 많다는 비판, 또는 일반직원과의 격차가 너무 커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이다.

 비리가 드러나 수감생활을 했던 일부 대기업 오너가 거액의 연봉을 챙기고 초라한 경영성과에도 거액의 급여를 챙긴 임원들의 사례는 비난여론을 몰고 왔다. 재벌에 대한 국민의 위화감(違和感)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기 전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기 몫을 챙기기에 앞서 청년 실업자를 더 채용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선업(善業)을 쌓는 길이다. 정도전이 좌절하고 고민했던 시대 상황이 재연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본질적인 문제는 권문세족들의 정치권력 및 경제 권력의 독점과 자영농의 몰락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치유할 만한 개혁의 부재는 결국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 이상 사회경제적 모순의 양극화, 구조화가 심화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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