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5:35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4.04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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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05)
 서울에 올라온 양자도 상호처럼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는지 양자도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엄격한 가정교육은 타고난 외모를 뒷받침하며 지성 미인이 되어 있었다. 중앙대 축제에서 메이퀀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날은 양자의 최고의 날이었다. 자신의 외모가 공적으로 인정받는 날이기도 하고, 남학생들에게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날 후로 양자는 교내 스타로서 학창 생활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선 젊은 여인이 한창 주가가 높아질 땐 꼭 백마를 타고 왕자님이 나타난다. 양자에게도 왕자가, 그것도 빛나는 말을 탄 왕자님이 앞에 나타난다.

 왕자는 박대전(가명)이었고 중앙대 선배로 중앙방송국에서 자리를 잡은 아나운서였다.

 박대전은 중앙방송국이 KBS와 합병하면서 MBC 아나운서로 자리를 옮기고, 그 방송의 사장까지 지내다 국회의원도 몇 번씩 하면서 우리나라 정계 명사가 된다.

 양자와 박대전 결혼을 약속하고, 둘은 양자의 부모님께 승낙을 받기 위해 삼천포 수창의원까지 내려온다.

 양자의 부모님은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훌륭한 사윗감을 앞에 두고 반대를 한다. 이유는 박대전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이라 사위감도 같은 종교이길 바랬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풋사랑으로 끝이 났다.

 훌륭한 사위감을 종교 이유로 거절한 부모님의 신앙심도 대단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님이 거절한다는 이유로 끝낸 양자의 효심도 대단했다.

 그 뒤 양자와 결혼의 뜻을 이루지 못한 박대전은 우리나라 제일의 재벌 딸과 결혼했고, 양자는 선을 봐 목사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양자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TV만 틀면 우리나라 최고의 아나운서가 된 박대전이 나와 TV도 잘 보지 못했다.

 아내의 이상한 행동에 남편은 은밀히 아내의 뒷조사를 하게 되고 또 박대전과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이혼을 했다.

 1960년대 젊은 나이의 2급 만화작가가 된 나는 삼천포에 들리면 꼭 수창의원에 들린다. 어릴 적에 친구 상호, 영호는 서울로 부산으로 흩어져 있어 볼 수는 없지만, 나를 늘 사랑해 주시던 강 권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다.

 쉴 틈 없이 드나들던 수창의원 별채 현관문, 다다미의 방들… 나는 가끔 그곳을 볼 때마다 정겨움에 눈물이 났었다.

 한 번은 내가 수창의원 현관문을 두들기자 양자가 마중을 나왔다. 양자가 이혼을 하고 수창의원에 와있을 때였다.

 소녀 시절 해맑은 웃음은 없었지만, 여전히 미인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양자는 강 권사님이 계신 방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권사님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양자는 과일을 깎으며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일어서는 나를 양자는 현관까지 마중했다. 웃음을 잃어버린 양자는 이제 언제 볼지 모른다는 것을 알았는지 멀어지는 나를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양자를 나는 속으로 저렇게 아름답고 마음 고운 여인에게 악운이 없길, 좋은 분 만나 잘살았으면 하고 몇 번씩이나 내가 섬기는 신에게 빌었다.

 양자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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