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3:43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30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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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101)
 79. 뽑기만화의 선수

 껌 한 개, 요즈음 아이들이야 씹기 싫어 안 사지, 돈이 없어 못 사지는 않는다. 그리고 껌을 산다면 한 통을 산다. 지금은 껌을 한 개만 사려고 하면 파는 곳도 없다.

 그러나 1957년쯤에는 껌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사는 사람이 많았고, 또 한 개씩 사서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뱉어놓고 한참 후에 씹으면 다시 단물이 살아나고 했다. 그리고 잘 때는 벽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 날 또 씹고는 했다.

 그 무렵 어느 껌 공장에서 껌을 팔기 위해 아주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낸다. 일명 ‘뽑기만화’, 껌을 팔기 위해 만화로 유혹한다는 발상이었다.

 극장 포스터만 한 두꺼운 종이에 윗부분 3/4은 만화책을 6권 정도 붙이고, 나머지 1/4은 껌을 50개 붙여 놓았다. 아이들이 껌 한 개 값을 내고 붙여져 있던 껌을 한 개 까면 번호가 적혀 있는데, 위의 만화책 번호가 나오면 만화책을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껌 공장은 처음에는 출판사의 재고 만화를 사서 사용했지만, 워낙 장사가 잘돼 만화책을 직접 제작하게 된다. 전국에 구멍가게가 1만 곳 있다고 한다면, 그곳마다 뽑기만화를 한 판만 갖다 놓아도 만화책이 6만 권이 필요한 것이다. 그 숫자는 대여점에 보급되는 권수보다 많은 것이다. 표지는 당시 이름이 좀 알려진 작가들이 그리고 신인 만화가들이 속지를 그려 출판해 뽑기만화에 사용했다. 이곳에서 출발한 신인 만화가들이 나중에 인기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만화광인 나는 처음 구멍가게에 앞을 지나다 처음 뽑기만화를 보고 놀랐다. 그것도 껌 한 개 값으로 만화책을 살 수 있다니!

 만화책은 16쪽 정도인데 모두가 재미있게 생겼다. 그래서 호주머니를 뒤져 껌 한 개를 뽑아 보지만 당첨 번호가 나오질 않았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다니던 나는, 어느 가게의 뽑기만화 판에 껌 한 개가 제자리에 붙어 있지 않고 만화책 밑에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껌이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눈독 들이고 있다가, 돈을 내고 주인아줌마가 안 보는 사이에 그 껌을 떼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그 껌에서는 만화책 번호가 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뽑기만화에서 만화를 뽑게 된다.

 껌 공장에서 이 뽑기만화 판을 만들 때 구멍가게 주인이 손해를 보지 않게 만화를 뽑는 번호가 들어 있는 껌은 구멍가게 주인이 관리하도록 위의 만화책 옆에 붙여 놓아둔 것이다.

 가게 주인은 처음부터 만화가 뽑히면 나머지 껌이 팔지 못하게 되니까 번호가 있는 껌은 미리 떼놓았다가, 껌이 거의 팔렸을 때 다시 붙여 놓는 것이다. 그때 나는 껌 공장에서 편법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뽑기 선수가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하며 어떻게 뽑았느냐고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우리 집 앞집에서 구멍가게를 새로 차렸는데 이 집에서도 뽑기만화 판을 갖다 놓았지만, 번호가 있는 껌을 관리할 줄 몰라 그냥 그대로 만화책 옆에 껌을 고스란히 붙여 놓은 것이다. 나에게는 횡재였다. 그래서 개시도 안 한 뽑기만화 판의 만화를 몽땅 뽑아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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