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2:29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26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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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99)
 77. 낙원에서의 처신

 1980년부터 나라는 급변하다가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나의 삼천포 시절, 우리 집 대각선 앞집의 동화의원 원장 집에는 아들 김경수와 막내 김기도가 있었다. 둘 다 나와 초등학교 동기생이다. 경수는 젊은 나이에 병사했고, 기도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과를 나와 문화방송에서 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 방송국의 정치부 국장까지 승진했다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픽업돼 청와대 홍보 비서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친한 친구가 청와대에 자리하고 있으니 시간이 나면 청와대에 들려 친구를 만나고 했다. 그러면서 기도는 나에게 사조직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는 동창인 정상재를 만나 친구들끼리의 사조직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만들고 회원들을 규합하고 조직 이름을 ‘삼우산악회’라 정했다.

 그때 회원으로 참여한 친구 중에 덕진이 형의 아우 성진이도 있었다. 옛날 우리 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던 그 형제다. 그때부터 성진이와 나는 매주 만나 서울 인근 산으로, 음식점으로, 술집으로 몰려다니는 사이가 됐다.

 성진이 집은 한남동 달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때가 성진이 형수가 장관을 하던 시기였다. 내 생각으로는 성진이는 장관 형수를 둔 사람치고는 어려운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성진이 부인은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실직한 후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면서도, 성진이 친구를 만나러 갈적에는 기죽지 말라며 성진이 호주머니에 1~2만 원씩 넣어 주고는 했다.

 삼우산악회는 결성된지 다음 해에 기도는 삼천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고, 우리 삼우산악회 회원들은 삼천포로 내려가서 선거 운동을 도우며 당선되는데 일조를 했다.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을 해 나가고 있을 무렵인데, 어느 날 성진이가 큰 변을 당하고 만다. 내가 빠진 친구들 모임에서 성진이가 술을 먹고 밤늦게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로 타계하고 만 것이다.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 자신에게 성진이 타계 한 책임을 물어 두고두고 마음에 큰 짐을 지고 살았을 것이다.

 성진이 장례는 삼우산악회 회원들이 도맡아 진행해 나갔다. 내가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문상객 두 분이 들어왔는데, 한 분은 정치인 김근태였고, 또 한 분은 덕진이 형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형에게 “덕진이 형, 오랜만입니다”하고 인사를 건넸다. 덕진이 형이 나를 기억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인사에 답하고 부의함에 봉투를 넣더니 영정 앞에 인사 한 번 하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이 광경은 마치 먼 친척 초상집에 들렀다가 가는 모습이었다. 한 부모에게 태어난 자식이고, 부모님 떠나고 둘은 함께 붙어 다니며 이 고생 저 고생을 하던 피붙이였다. 그런 동생의 장례식장은 친구가 지키고 있다. 형이라는 사람은 손님으로 잠깐 들리고, 형수라는 분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자신의 낙원이 깨질까 무서웠던 걸까… 어릴 적엔 공부에 매달리고, 성인이 돼서는 감옥에서, 이제는 낙원에 앉아 부인의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덕진이 형은 한 번이라도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해본 적이 있는 것일까? 오늘도 덕진이 형은 자신의 낙원을 살 찌우게 하는 현란한 책들을 탐독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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