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3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2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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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97)
 75. 덕진이 형의 처

 덕진이 형의 처는 194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월남해 서울 영등포에서 초등학교와 중ㆍ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적에는 생활고 때문에 물지게도 져보고, 연탄도 갈며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정계 활동에서 양쪽 의견이 대립될 때 물지게 균형법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나중에는 고려신학교와 이화여대 대학원도 수료한다.

 감수성이 많은 순수한 문학 소녀는 덕진이 형을 만나서 사상을 배우고 사회를 배우게 된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6개월 후,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남편 덕진이 형이 끌려간 며칠 후는 자기도 붙잡혀 재판을 받고 1년 6개월이라는 형을 받고 복역을 한다.

 1년 6개월 형을 마치고 출감한 그녀는 나라가 휴전 중인 처지에 적대국 사상을 가진 남편이 감옥에 있는 형편이라,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감옥 안의 남편과 감옥 밖의 부인은 만날 수 없는 처지였다. 15년이란 시간은 짧은 것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편지로써 인연의 끈을 잡고 있었다. 남편은 부인의 고난에 힘을 부추기고, 또 부인은 남편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표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인고해 나갔다.

 이들이 옥중에서 주고받은 내용들은 나중에 책으로 발간돼 많은 이들이 읽게 된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한결같이 서로를 바라보며 견뎌 나간다는 것은 읽는 이들에게까지 서로의 깊은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나 싶다.

 어떤 이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눈물이 나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인은 남편에게 필요한 책을 보내 주면서 덕진이 형의 옥바라지를 해나갔다. 그러면서 생활을 하기 위해 모교에서 기숙사 사감 일을 보며 운동권 학생들을 옹호하다가 그만 학교에서 퇴직을 당하고, 어려움 속에서 강원용 목사를 만나 일을 거들게 된다. 강 목사는 사회운동가였다. 부인은 강 목사에게서 사회를 배우고, 또 사회 활동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남자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1979년 이른바 ‘크리스천 아카데미’사건에 연류된 것이다. ‘크리스천 아카데미’는 19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강 목사가 만든 단체이다. 부인은 당시 여성 교육을 담당하는 간사로 일했는데 단체에서 반정부 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부인도 같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온갖 수모를 겪으며 2년 6개월의 옥고를 견디다, 광복절 특사로 1999년에 출감하게 된다. 출감한 부인은 제일 먼저 남편의 석방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드디어 덕진이 형은 부인의 열성적인 운동으로 출감하게 된다.

 덕진이 형은 27세부터의 청춘은 감옥에서 보내고, 마흔의 중년이 돼서야 석방된 것이다. 두 사람은 그제야 부부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부인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가족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 처벌법’ 등의 운동을 펼치며 꾸준히 사회운동을 해오다가, 여성 단체인 ‘여성 민우회’와 ‘여성 단체 연합’ 등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러면서 이 여인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맹렬한 여성 운동가 중에 한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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