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45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23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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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96)
 74. 낙원을 찾아서…

 부모에게 남겨진 후 가난함과 억울함, 천대 속에서 살고 있던 형제는 도저히 지금 세상에서는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빈부의 차이가 없는 곳, 범죄가 없는 곳, 짓눌림과 구박이 없는 곳, 사랑과 평화만 있는 곳, 그런 낙원은 있는 것일까? 아버지 어머니가 동경하던 낙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면 낙원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들 형의 이름은 박덕진(가명)이고 동생의 이름은 박성진(가명)이다. 동생 성진이는 조금 여유 있는 성격이라서 나와 어울려 얘기도 하곤 했다. 덕진이 형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여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사람으로 보였지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고, 또 결심한 일은 꼭 이루고 마는 강직한 사람이었다.

 두 형제는 그렇게 우리 집에서 몇 개월을 지내다가, 어머니가 그 집을 파는 바람에 다시 남양으로 올라가 버렸다.

 세월이 흘러 나라는 자유를 외치는 민주 투사들이 몸부림치고 있을 무렵이다. 서울에 덕진이 형은 천신만고 끝에 삼천포 학생으로는 들어가기 힘든 서울대학교 상업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덕진이 형은 1967년 대학 생활 중에 신영복이라 하는 이상주의자를 만나게 된다. 신영복은 덕진이 형에게 지금 사회와는 전혀 다른 빈부격차가 없는 곳, 범죄가 없고 억울함도 없는 사회가 있다고 말한다.

 덕진이 형은 솔깃했다. 어릴 적부터 동경해 오던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신영복이 말하는 것은 다 맹신하고, 건네주는 책들은 모두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포섭하라는 지시에 따라 기독교 모임에서 만나는 여대생 세 명을 포섭하기도 한다.

 그중에 한 여학생은 사상보다는 덕진이 형을 연모하고 형이 시키는 대로 잘 따랐다. 시간이 갈수록 낙원을 찾는 여정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신영복의 위 조직은 김종태란 이북의 지시를 받고 있는 통일 혁명당 서울시 위원장을 중심으로 김질락, 신영복, 이문규, 이재학 등의 주도로 조국 해방 전선은 공산 혁명을 계획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식인, 청년, 종교인 등을 무장시켜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 암살과 정부 정복을 기도한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또 이북에서 대량의 무기와 자금, 공작선 등을 준비했다.

 덕진이 형은 엄청난 내란 음모 진행 중에서도 자기 하부 조직인으로서 사랑으로 다가오는 여학생과 1968년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달콤한 신혼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후 6개월 정도 흘렀을 때쯤 중앙정보부는 이 조직을 은밀히 추적을 해오다 날을 택해 가담한 자들을 모두 검거한 것이다. 인원은 모두 158명으로 한국 역사상 간첩 사건으로 검거된 자가 최고로 많은 사건이 된다.

 붙잡힌 덕진이 형은 재판을 받고 15년 실형과 자격정지 15년 형을 받게 되고, 부인은 1년 옥고에 1년 자격 정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주모자인 김종태, 이문규 등은 사형이 내려진다.

 이북에서는 김종태를 구출하기 위해 1968년 8월 20일 인민군 735부대 소속인 무력 부대원 14명을 공작선에 태워 제주도로 급파했으나, 국군들에게 발각돼 교전 끝에 14명 중의 12명은 사살되고 2명은 체포됐다.

 낙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낙원을 찾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는 감옥에서 아까운 청춘을 보내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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