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7:47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20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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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95)
 다시 총알을 터트려 보기로 마음을 먹고 집으로 가서 탄창을 숨겨둔 마루 밑을 살폈다. 그런데 탄창이 든 철통이 보이질 않았다. 이리저리 샅샅이 살펴도 마루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생각하기로 전선도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시는 총알을 터트리지 않겠다고 다짐은 받았지만, 그것도 못 믿어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집을 뒤져 탄창을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쉬웠지만 어른들이 가져간 것을 따질 수 없으니 총알 터트리기 놀이를 포기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철이 들어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 섬뜩하고 너무나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혼자도 아니고 동네 아이들까지 데리고 했으니, 혹시 잘못됐더라면 인명사고까지 날 뻔한 일이었다.

 그날 당산거리의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얼마나 놀랐을까? 그분들이 마음을 먹었다면 경찰서에 신고해 처벌을 받게 했을 텐데 우리를 알아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동네 선생님에게 말을 전했다. 또 아이를 불러 놓고 귀한 사이다와 과자까지 먹여가며 훈계했다. 다짐을 받고서도 우리 집을 샅샅이 뒤져 탄창을 치워 주신 전선도 선생님, 그리고 아들 녀석이 엄청나게 위험한 장난을 하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신 우리 아버지. 모두들 나의 위험한 놀이를 사랑으로 해결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아름다운 바다, 산, 섬들이 있는 삼천포는 나에게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73. 공부 벌레들

 삼천포시(지금은 사천시) 선구동 로타리 주위의 우리 동네. 1950년 나라가 극도로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우리 동네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반듯한 개인 사업을 하면서 아쉬움 없이 살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고, 놀고 싶으면 원 없이 놀 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두 패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밤낮으로 공부에만 매달려 있는 공부 벌레, 또 한쪽은 나랑 운봉이 중심으로 틈만 나면 놀러 다니는 쪽이었다.

 나와 함께 자란 또래의 공부 벌레들은 성인이 되어 의사, 대기업 사장. 임원, 또 국회의원이 둘, 대학교수 등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평생 살아보니 어릴 적 공부 벌레들은 나중에 사회에 공헌하고 나라에 덕을 주며, 또 개인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우리 동네 공부 벌레들하고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공부 벌레가 동네에 잠시 머물다 가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가 여윳돈이 생기셨는지 우리 집에서 서쪽으로 50m쯤 가면 점포가 없는 가정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을 사신 것이다. 그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나와 형이 사용했고, 다른 방에는 이웃에 사는 지방신문 기자분의 조카 둘에게 쓰게 하셨다.

 그 조카들은 형이 고등학생이었고 동생은 중학생으로 나와 같은 학년인데 동생은 남양중학교, 형은 삼천포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형제의 부모는 6ㆍ25전쟁 때 월북을 했고, 남겨진 형제는 삼촌의 배려로 살아가고 있었다. 형제는 자고 일어나면 공부, 학교를 갔다 오면 또 공부, 공부에 원한이 있는 듯 공부밖에 몰랐다. 한 번씩 어머니가 간식을 들고 이 집에 들르면 자기 아들들은 놀기 바쁜데, 이 형제는 밤낮으로 공부만 하니 내가 질투가 날 정도로 칭찬을 하시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부는 위험한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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