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0:1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18 2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억의 삼천포 시절(93)
 다행히 아이들은 큰 중상 없이 찰과상 정도의 피해만 입었다. 그러나 시장 집에서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시장님에게는 아들이 한 분 계셨는데, 6ㆍ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총살당하고, 남은 자손이라고는 재우뿐인데, 재우마저 변을 당하면 대가 끊어질 뻔 한 것이기에 더 놀란 것이다.

 재우에게는 귀옥, 은옥 두 여동생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데, 세월이 흘러 10년 후에 나는 만화가가 되고 한 번씩 삼천포에 내려가 귀옥이가 운영하는 약국에 들르면 귀옥이, 은옥이 자매는 옛날 자기 집의 화약 폭발 사고의 원인으로 나를 지목한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고 끝까지 내가 개입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왜 그 자매가 내가 개입됐다고 믿는가 하면, 자기 오빠는 모범생이고 위험한 장난을 칠 학생이 아닌데, 오빠 친구 중에서 그런 위험한 놀이를 오빠에게 가르치고 함께할 친구는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개입했다고 해도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니니, 끝까지 변명을 안 하고 했다.

 실은 나는 그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놀이를 한 적이 있다. 1950년대 삼천포 앞바다는 수면이 낮아 썰물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갯벌이 되고는 했다. 나는 이때를 기다려 갯벌에서 굴도 깨고 납새미(가재미 종류의 적은 물고기)도 잡고, 말속도 잡고 하면서 운동장 삼아 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갯벌에 파묻힌 심상치 않은 쇠 상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사롭지 않게 보여 벌을 파고 그 쇠 상자를 꺼냈다. 반듯하게 생긴 직사각형 철통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철통 안에는 장총알 같이 큰 총알이 빽빽이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

 행운인가? 재앙인가? 나는 무시무시한 물건을 떠맡은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우리 집 마루 밑에 꼭꼭 숨겨 놓았다.

 그리고는 한날 저녁을 택해 탄창 안의 총알을 하나 꺼내 아이들 4~5명을 데리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각산 밑의 동네 당산거리로 갔다.

 당산거리는 큰 나무가 있고 나무 주위로 집들이 빙 둘러 쌓여있는 동네인데, 이 나무를 당산나무라 하고 그 동네를 당산거리라 불렀다.

 우리는 당산나무 아래에다 움푹하게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중간에 총알을 하늘로 향해 세웠다. 총알 위로는 나뭇가지를 덮었고 또 그위로 불을 질렀다. 그런 후 우리 일행은 당산나무와 큰 돌 뒤에 숨었다. 불은 얼마간 피어올랐고, 우리는 납작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까지 땅에 처박고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꽝!!’하고 동네가 떠날갈 정도의 큰 우레소리와 함께 총알이 폭발했다.

 스릴 만점의 긴박한 순간이 지난 것이다. 총알이 터진 곳으로 가봤더니 총알을 덮은 나무 가지들은 온데간데없고 땅 밑의 흙이 위로 뒤집어져 올라와 구덩이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 시원한 한 판 게임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당산거리로 빠져나갔지만 문제는 그 다음 날 발생하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