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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12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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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9)
 68. 황금 시절 문을 연 ‘밀림의 왕자’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하고 대한민국은 해방됐고, 또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6ㆍ25전쟁이 터지던 격동의 시절이 지난 뒤 불과 2~3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이때 일본에서 한 편의 만화가 출간되면서 일본 열도와 한국 반반도(半半島ㆍ남한을 칭함)는 만화 열풍으로 들끓게 된다.

 내가 그 작품은 처음 접할 때는 1955년,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다. 그때는 만화라면 대여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시절이었는데 나는 진삼도로에 있는 서점 앞을 지나다가 서점 유리창에 진열해 놓은 책 한 권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밀림의 왕자’란 표지 아래 한 소년이 윗옷은 다 떨어져서 한쪽 어깨만 겨우 걸치고, 기다란 창을 들고 앞을 향해 서 있고, 그 뒤쪽으로 노란 머리에 파마를 한 백인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작가는 ‘윤영기’라고 적혀 있었는데, 처음 보는 작가였다. 그리고 책 쪽수는 보통 만화보다 배나 많을 듯 두꺼웠다.

 나는 너무 진귀한 만화라서 한참이나 그 책 표지를 감상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후 삼천포 시내에서 누가 사서 돌리는지 그 만화책이 돌기 시작했다. 또 학교에서는 누군가 그 책을 가져오면 교실 안의 아이들은 서로 보겠다고 난리를 쳤다.

 이 ‘밀림의 왕자’는 한 페이지에 3분의 1은 글이었고 나머지는 그림이 들어가는 것이 그림소설류의 만화책이었다. 펜촉을 사용한 화풍은 데생이 정확하고, 펜을 누르지 않고 사용해 선이 가늘고 일정했다.

 이 책이 돌고 돌다가 내 손까지 와서 나도 읽어볼 수 있었다. 명작이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아프리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한 편에 다 표현하고 있었다.

 이 만화책은 단지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아프리카의 지리와 풍속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참고서 역할도 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만화가가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밀림의 왕자’는 일본 만화의 해석판으로 원작자는 ‘야마카와 소지’, 원작 제목은 ‘소년 케나’이고 그분은 일본 만화계의 전설이었다.

 이 책이 한국에 나오게 된 것은 그 무렵 일본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김성옥 사장이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책을 ‘한국에서 출판하면 히트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다. 이 만화를 사서 한국으로 들여온 김성옥 사장은 대단한 선각자였다.

 당시 일본과 한국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일본은 만화를 좋아하는 민족이고 이미 서점에서 만화책이 많이 팔리고 있었다. 또 돈이 많은 나라여서 ‘소년 케나’의 히트가 가능했지만, 한국 서점에는 전혀 만화 판매망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또, 전쟁을 겨우 벗어나 극도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일본 만화를 개작해 서점용 만화로 출판한다는 것이 극히 위험한 일인데도, 과감히 시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인기 작가 서봉재 선생님에게 복사본으로 그려 달라 했는데 원고료를 너무 비싸게 요구해 윤영기 선생님에게 자료를 넘겨 제작해 책이 출판된 것이다.

 나는 1995년쯤에 한국 만화가 협회 주최로 일본 만화가 초청 행사가 있었을 때, 일본 만화가들과 같이 이 ‘밀림의 왕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동석한 일본 작가들도 ‘소년 케나’의 애독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야마카와 소지 선생님은 아프리카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가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일설에는 야마카와 소지 선생님의 ‘소년 케나’가 나오기 전에 비슷한 작품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있었는데, 그 책을 야마카와 소지 선생님이 참고해 작품을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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