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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10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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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7)
 나는 성이 최씨다. 신라 때 석학 최치원 선생의 자손인데, 이분의 자식 중 한 분이 전주로 이주했고 그 자손들을 전주 최씨라고 불렀다. 전주 최씨 중 또 한 파가 다시 경상도 땅으로 와서 함양 산청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이 파가 전주 최씨 연천파다. 우리 할아버지는 전주 최씨 연천파의 후손이시고, 할아버지 부친은 산청의 원님으로 있었다는데, 확인은 못 해 보았다.

 할아버지는 2대 독자였는데 혼자 삼천포로 와서 삼천포 아가씨와 결혼을 하셨다. 그분이 나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자녀를 12명이나 낳으셨지만, 일본으로, 또는 이북으로 흩어지고 내가 철이 들적에는 삼천포에 남아있는 아버지 형제들은 4분이셨다.

 그리고 산청에는 전주 최씨 연천파 일가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 뻐꾹새 아저씨도 연천파로 아버지와는 먼 친척뻘이셨다.

 67. 뻐꾹새 아저씨

 나는 뻐꾹새 아저씨의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저씨 이름을 갑돌이라 칭하겠다.

 갑돌이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산청 마을에서 뒤쪽 재를 하나 넘어 외딴 곳에 밭 다섯마지기로 농사를 하면서 살았다.

 나이가 스무 살이 훨씬 넘었지만, 깊은 산골에 가진 것도 변변히 없는 총각에게 시집올 처녀가 없어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빚 때문에 도망쳐 온 진주 사람이 열여섯 정도의 딸을 데리고 친척 집으로 피신을 왔는데, 그 사람의 친척은 오갈 때 없는 이 사람에게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몇 개월 후 병들어 죽고 말았다. 이제 딸만 남았는데, 이제 친척도 계속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없는 형편이라 여자아이는 오갈 때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분의 소개로 여자아이를 갑돌이에게 소개해 갑돌이 집에 살게 했다. 갑돌이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 여자아이도 갑돌이에게 정을 붙여 살면서 아이까지 낳게 된다.

 이 여인은 아이를 키우느라, 시어머니 보살피느라 아무 생각 없이 살았지만, 아이가 자라서 철이 들고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가 되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도시에 살아본 여자라 밥만 먹으면 들에 나가 밭만 매는 생활이 지겨워진 것이다. 그래서 갑돌이가 들에 나가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 늙은 시어머니는 방에서 잠든 사이 보따리를 챙겨 산청을 떠나 진주로 도망을 가 버렸다.

 갑돌이는 기가 막혔다. 엄마 없는 아들 녀석은 몇 날 며칠을 엄마를 찾아 울어 대다가, 한 달이 넘어서자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아이는 마음속으로 늘 엄마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또 몇 년이 지나 혼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엄마를 찾아간다며 갑돌이 몰래 집을 나가 버렸다.

 이제 다시 늙은 어머니와 갑돌이 단둘이 남게 됐다. 아내와 자식을 찾자고 집과 밭, 늙은 어머니를 버리고 산청을 떠날 형편이 아니었다.

 깊고 깊은 산골에 가진 것도 없는 자기에게 애당초 아내는 버거운 복이었다. 자식도 그렇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단념하고 또 엎드려 밭을 매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에는 노모마저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제 갑돌이는 깊고 깊은 오두막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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