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3:21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09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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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6)
 66. 사람이 되고 팠던 뻐꾹새

 ‘뻐꾹, 뻐꾹, 뻐꾹’ 이 소리는 뻐꾹새 울음소리다. 그리고 ‘뻐꾹, 뻐꾹, 고케케케, 뻐꾹’ 이 소리는 뻐꾹새가 짜증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는 소리다.

 해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 삼천포 벌리뜰 보리밭에 보리 이삭이 여물어 가면, 깊고 깊은 산골 끝 마을 함양 산청에 사는 뻐꾸기 한 마리가 멀고 먼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지 내려오고 내려오고 하염없이 내려와서 바다 끝 마을 삼천포까지 오게 되면 더 갈 곳이 없어 삼천포 시내를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왔던 쪽으로 되돌아간다.

 다른 뻐꾹새는 몸이 작고 두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니는 새 모습이지만, 이 뻐꾹새는 덩치가 크고 밀짚모자를 쓰고 흰 두루마리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영락없이 사람의 모습이다.

 이 뻐꾹새는 걸을 적에 고개를 먼 산 쪽으로 하고, 입으로 “뻐꾹, 뻐꾹” 울면서 걷는다.

 그러다 개구쟁이 우리들이 이 뻐꾹새를 보고 몰려가서 “뻐꾸기, 뻐꾸기”하면서 놀려 대면, 뻐꾹새는 우리가 귀찮은 듯, 날카로운 소리로 “코게게게”하면서 지팡이를 휘둘러 우리를 쫓아 버린다. 행색은 분명 사람의 모습인데 하는 짓은 꼭 뻐꾹새라, 삼천포 사람들은 이 사람을 ‘뻐꾹새’라 불렀다.

 어느 해 초여름, 내가 학교에 다녀와서, 급하게 대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서자,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는 나더러 “조용히 해라. 방에 손님이 와 계신다”하셨다.

 그래서 나는 움직임을 줄이고 살며시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와 또 다른 분이 술상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그 손님이 바로 ‘뻐꾹새’였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뻐꾹’거리면서 다니는 게 사람 같지 않았는데, 아버지 앞에 앉아있는 모습은 사람 그대로다. 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두 분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먼 친척 아저씨란다, 인사드려라”라고 하셨다. 나는 뻐꾹새 아저씨에게 “안녕하십시오”하고 인사드렸다. 아저씨는 나더러 “오냐. 공부는 잘하느냐”하고 물으셨지만, 공부를 잘하지 않았던 나는 할 말이 없어 머뭇거렸다. 아버지는 대신 그 아저씨에게 “저 녀석은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아이입니다”하고 웃으며 말 하신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사실이 그런지라 변명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나에게 뻐꾹새 아저씨는 “공부 잘하게 생겼는데, 열심히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라고 하신다. 길에서 본 모습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뻐꾹새 아저씨는 아버지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우리 식구들은 밖까지 나와 아저씨를 배웅했다.

 우리 식구들의 인사를 받은 뻐꾹새 아저씨는 돌아서면서, 머리를 하늘 쪽으로 올리고는 다시 “뻐꾹, 뻐꾹”하면서 멀어지셨다. 그런 후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고, 아버지는 나에게 그 뻐꾹새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교통이 좋지 않아 객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삼천포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깊고 험한 산골짝을 말할 적에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동네, 함양 산청으로 지칭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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