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27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0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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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5)
 기도 아저씨 등 뒤에 있는 아이들은 극장 안에 들어간 사람들로, 영화를 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고, 기도 아저씨 앞에 있는 아이는 아직 극장 안에 못 들어 간 사람들로 영화를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기도 아저씨는 천천히 출입증을 살핀다. 두 아이는 아저씨 등 뒤에 서 있고, 한 아이는 아저씨 앞에 아저씨의 처분만 기다리고 서 있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기도 아저씨에게 우리 계획이 들킨다면 세 아이는 모두 쫓겨날 판이다. 삼천포 시에는 한 장 밖에 없는 교육청이 발행한 임검증이 요술을 부렸는지 세 장으로 둔갑한 것이다.

 아직도 아저씨는 출입증을 매만지고 있고 세 아이는 기도 아저씨가 속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아저씨는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마지막 친구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와 영호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러길 잠시, 기도 아저씨는 드디어 마지막 노익이까지 극장 출입을 시킨다. 우리는 너무나 좋아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기도 아저씨는 아이들이 좋아서 지르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 표정없이 묵묵히 다음 입장객들에게 표를 받고 극장 안으로 들여 보내고 있다.

 드디어 기도 아저씨는 우리의 작전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작전 성공에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좋은 우리는 그날 영화도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어른이 돼서야 그날 기도 아저씨는 우리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을 귀엽게 보고 기분 좋게 한 장의 출입증으로 세 아이를 입장시켜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삼천포에서 한 장 있는 임검증을 세 아이가 번갈아 들고 올 적에는 자기를 속이는 것인 줄 어떻게 모르겠는가.

 물론 아저씨는 모르는 보통 아이들이 임검증이 아닌 다른 한 장의 출입증으로 그런 짓을 했다면 들통이 나고 세 아이 모두 한 대씩 꿀밤을 맞고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기도 아저씨 입장에서 보면, 세 번째 아이가 임검증을 내보일 때 고개를 돌려 자기 뒤에 있는 먼저 들어간 나랑 영호를 힐끔힐끔 보고는 했는데,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첫 번째로 들어간 대장 격인 우리 집은 삼천포시 최고의 요지에 점포를 가진 집이고, 그 점포 유리창에 극장 포스터를 붙여 주기 때문에, 극장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니 우리 집 식구는 누구든 언제라도 공짜로 극장 출입을 할 수 있었고, 실제로 나는 한 번씩 어머니를 따라와서 공짜로 극장 출입을 하는 녀석이다.

 또 두 번째 들어 온 녀석은 덕망 높은 수창의원의 손주이다. 아저씨는 한 번씩 수창의원에 다녀오기 때문에 요 녀석이 이런 짓을 한다고 하여 함부로 대할 처지가 아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임검증을 들고 있는 이 녀석은 모르는 아이였지만, 이 임검증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나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교육청에서 파견한 극장 감독관이 아닌가, 이리저리 재보던 아저씨는 통 크게 한 장의 출입증으로 세 아이를 입장시킨 것이다.

 어린 시절 그때, 그런 사정도 모르고 기도 아저씨가 속았다고 뛰면서 좋아하던 우리는 참 철딱서니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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