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독수리가 돌아 왔어요
아! 독수리가 돌아 왔어요
  • 김루어
  • 승인 2014.03.06 19:45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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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라는 새장에 갇힌 내 삶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내 일상이 숨 막힐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습관처럼 붙안고 있는 컴퓨터도, 책도, 음악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돌리던 쳇바퀴야 넘어지든 말든, 일상에서 뛰어내려 새장을 깨부수고 달아나고 싶다. 바바리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거리를 쏘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한 듯 고질인 무릎이 저려왔다. 길가 벤치에 앉았다. 외로웠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 조금 넘었을 뿐.
 한참 궁리한 뒤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대구에 가려고, 40여년 전 청년유도회(儒道會)이래의 친구가 있는. 터미널에 내리니 20분 뒤에 출발하는 차가 있었다. 차에 올라,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이성친구이기는 하지만, 둘 다 인생에서 쓴맛을 본 적이 있는 동병상련 때문인지,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얼마 전 이 친구가 낙상으로 수술까지 하게 되었을 때, 내 팍팍한 삶 때문에 문병을 가지 못했다. 이미 퇴원한 상태이지만 이참에라도 찾아보면 면피는 될 것 같았다.
 대구에 도착하니 1시가 넘어 있었다. 날씨가 다소 삽삽(颯颯)했지만 대도시답게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움직임에는 활기가 있었다. 나는 친구 말대로 택시를 타고 성서 홈플러스까지 가 전철로 갈아타 서쪽 종점 바로 앞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주위가 전부 아파트의 숲, 도시 근교의 숲을 밀어내거나 야산을 깎고 들어선. 소위 말하는 신도시였다.
 낯선 지역의 생소함에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가늠하는 내 등을 누가 툭 쳤다. 친구였다, 발에 깁스한 상태로 목발을 짚고 목에는 쌍안경을 건. 몸이 불편한데 왜 나왔어? 내 집엔 처음이잖아. 아파트인데 집 못 찾을까? 실은 갑갑해서 나왔어, 자네에게 보여줄 것도 있고. 보여줄 것? 쌍안경으로? 그는 내 말엔 답을 않고, 점심 전이지? 라고 말하고 지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가 안내한 곳은 강정보 조금 못 미쳐 있는 매운탕 집이었다.
 탕은 맛이 있었다, 그는 반주로 소주를 시켰다. 아직 술 마시면 안 되잖아! 인생살이에 술자리만한 곳이 어디 있나(人生何處似樽前)? 이 삿귀(詞句)를 계기로 우리는 청년 시절로 돌아갔다, 술과 탕이 빌 때까지. 자리를 파하고 나왔을 때는 4시였다. 적절한 시간대였다, 바로 출발하면 저녁 시간쯤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그런데 그가 내 계산을 깨뜨렸다. 나하고 어디 좀 가. 아마, 글감이 될 거야. 귀가 반짝 뜨였다.
 그가 데려간 곳은 달성습지였다. 습지구역 옆 강변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이어서 걸어야만 했다. 가끔 자전거 탄 이들만 엇갈려 갈 뿐 도로는 스산했다. 목발을 짚고 기우뚱거리며 앞서 걷는 그를 따라 1km 정도 걸어 건너편에 직렬로 이어지던 야트막한 산들이 방향을 트는 바람에 물길을 막아 강 구비가 도는 둔치에 그는 시든 그령을 눌러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깔고 앉은 그령을 하나씩 꺾어 물었다.
 강폭은 100m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좁았고 물결은 멈춰 있는 듯 고즈넉했다. 가끔 물고기들이 퍼덕이며 물 위로 치올랐고 건너편에는 청둥오리 떼가 수면에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평화로운 정경. 친구가 말했다. 생각나는 한싯귀 없어? 그 말에 뇌리를 스치는 싯귀. 何人把神筆 乙字寫江波! 역시 나랑 필이 통하는군! 그런데 내 생각에, 시중에 나도는 과거형 풀이보다는 현재형 풀이가 더 적절하고, 하인(何人)은 자연으로 보는 것이 온당한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현재형으로 옮겨보니 질감 차이가 있었다. 누가 귀신같은 붓을 잡아, 저 강물 위에 새 을(乙)자를 그려놓는가! 그렇지만 글감이 될 정도는 아니어서 불만스레 친구를 보니, 그는 쌍안경으로 대각선 산 밑 쪽 수면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도 오리떼들이 수면에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멀어서인지 색깔이 검어 보이는. 고작 오리떼를 보여주려고 여기 데려온 거야? 그가 쌍안경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리가 아냐, 물닭이야. 물닭!
 쌍안경으로 보니 과연 물닭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퉁을 주었다. 물닭 따위는 글감이 못돼! 그가 흥분해서 말했다. 살아있는 물닭이야. 전 국토가 시멘트화 된 이 나라에 살아있는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은 줄 알아? 뿐만 아니라 여기엔 왜가리 고라니와 삵, 너구리도 있다구! 나는 듣고만 있었다. 이 땅에 겸손하지 못한 자네 같은 이들에게 이 세상이 인간만의 땅이 아니라는 것이 그놈들이 오늘 나타나 주면 더 실감이 날 텐데! 그놈들? 독수리 떼!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농촌에서 보낸 유년기 어느 시기, 문득 하늘을 올려보다 본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선회하던 독수리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처음 이 세상은 사람만의 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 독수리를 못 본 것이 반세기쯤 된 것 같다. 우리는 독수리를 기다렸다. 아마 1시간 이상이었을 게다. 하지만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막차시간 때문에.
 그가 말했다. 실망하진 마. 자네 사는 곳에서 가까운 화포천에 가면 더 쉽게 독수리를 볼 수 있을 게야. 그곳이 우리나라에선 가장 많은 독수리 도래지니까.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화포천이라는 지명조차 처음 들었기 때문에. 그때였다. 대각선 산정에서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두 쌍의 독수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놈들은 저무는 일몰을 배경으로 유유히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은 너희 인간들만의 땅이 아니야, 라고 시위라도 하듯.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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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014-03-12 11:35:48
극적으로 독수리가 나타났네요. 신기합니다.

강대선 2014-03-10 09:20:35
아, 독수리..

하늘을 주름잡고 날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약간의 주눅이 들었을까요..
가끔 부끄럽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서릿발 같은 눈매를 생각할 때면...
그래서 독수리하면...
왠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무섭고도 경이로운 존재..^
시인님이 들려주시는
독수리의 이름에 마음이 설렙니다..
이 봄에 저는 어디를 날고 있을까요? ^
건강하세요. ^

이서윤 2014-03-09 11:08:17
노을 머금은 강위로 펼쳐진 두쌍의 독수리.
환희입니다!
막힌 가슴마저 터집니다
이런 풍경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큰 기쁨일듯 합니다

hong 2014-03-07 10:35:18
서면 장절궁 잔디에 누워 바람불어 흔들리던 소나무를 바라보던..
그 여운이 오래남았던 어느날이 생각났어요
하늘은 올려다보니 눈이 시렸었구요.
아득한 세월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시네요..^^

햇살은 좋은데 바람불어 스산해요
봄이오는 진통인가 봅니다

임종관 2014-03-07 07:33:42
요즘은 맹수를 보기가 참 힘들지요
특히 그들이 자연 속에서 그들의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힘들고 야생 독수리를 위해 인간이 던져주는 죽은 고깃 덩이를 먹는 독수리 떼들 티비에서 본적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도 부모가 주어지는 과보호 덕분에 야성을 잃는 독수리처럼 되어 가고들 있지요..자연 속에서 야성을 가진 독수리의 모습이 얼마나 멋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