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16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06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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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4)
 65. 극장 기도 아저씨 속여먹기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각산 밑 개울가에 있는 ‘삼천포 장로 교회’라는 작은 교회에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교회 선생님 중 한 분이 삼천포 교육청에 교육감으로 계셨다. 이분은 키가 크고 달리기를 잘해서, 학교 운동회 때 학부형들 릴레이 경기 때 마지막 주자로 선발됐다. 이 교육감님의 팀이 운동장 1/4 바퀴나 떨어진 상태에서 마지막 주자로 교육감님이 바톤을 받으셨는데, 얼마나 빠른지 상대 선수를 그대로 앞질러 당당히 골인했다. 이 바람에 관중들이 난리가 났었다.

 어느 날 수창의원 둘째 아들 영호가 나에게 와서 “형, 오늘 영화 보러 가자!”라고 하면서 교육청에서 발행한 극장 출입증을 내보였다. 영호는 교회 선생님이신 교육감님이 영화를 보라면서 빌려 주셨다 했다.

 그 출입증은 ‘임검증’이라고 적혀있고 대각선으로 빨간 줄이 그어진 것이 무시무시해 보였다. 이 출입증은 교육청 직원이 수시로 극장에 들려 프로의 성격과 극장의 상태, 그리고 관중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출입증이다.

 영화라면 빼지 않는 나인데, 영호가 그런 제안을 하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날 영화도 미국 서부 영화로 보고 싶었던 참인데….

 문제는 이 한 장의 출입증으로 한 사람 밖에 출입이 안되는 데도, 나는 또 다른 아이 노익이까지 불러 세 명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극장 앞까지 왔다. 한 장의 출입증으로 세 아이가 들어가기 위해서 극장 기도 아저씨를 속이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극장 기도’란 말은 극장 문 앞에서 관중들에게 표를 받고 입장을 시키는 직책을 말하는 일본식 단어인데, 한국말에는 그에 맞는 단어가 없어 극장가에서는 아직도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작전은, 먼저 한 아이가 들어가고, 들어간 아이가 출입증을 출구 문틈으로 밖으로 주고, 다른 아이가 받아 다시 극장으로 들어오면서 세 아이가 다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극장은 입구는 작지만, 출구는 극장 안의 사람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에 집 대문보다 크고 또 문짝이 맞물리는 틈도 넓어 이 출입증을 얼마든지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먼저 내가 출입증을 가지고 기도 아저씨에게 보였다.

 기도 아저씨는 출입증을 슬쩍 보고 나를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 기분 좋게 안쪽으로 들어온 나는, 출구 쪽으로 가서 문틈으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호, 노익이에게 줬다.

 두 아이는 기다리고 있다가 출입증을 받았다. 다음 차례 영호는 그 출입증을 가지고 극장 입구 쪽으로 가서 기도 아저씨에게 내민다.

 기도 아저씨는 방금 보고 출입시킨 출입증을 다른 아이가 또 가지고 오자, 이상한지 이리저리 살피고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영호마저 극장 안으로 들어 보내 준다. 우리의 기막힌 작전이 반은 성공한 셈이다.

 어른들은 조금 멍청한 것 같았다. 머리 좋은 우리는 다시 영호가 가지고 들어온 임검증을 출구 문틈으로 밖으로 내보냈다. 세 번째로 노익이가 출입증을 가지고 입구 쪽의 기도 아저씨에게 내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익이를 선뜻 안으로 들여 보내지 않는다.

 먼저 들어간 나와, 영호는 기도 아저씨 뒤에서 노익이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도 아저씨는 그 출입증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더니 자기 등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먼저 들어간 두 아이. 즉 나와 영호를 힐끔 쳐다본다. 조금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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