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4:11 (수)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3.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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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82)
 그러나 한국의 인쇄 분야에 사람의 손이 필요 없는 ‘프로세스’라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박 선생님은 그 작업도 손을 놓게 된다.

 선생님이 고생한다는 소문을 들은 박기당, 김종래 선생님은 박광현 선생님의 재기를 위해서 박기당 선생님이 출판사를 주선하고, 김종래 선생님과 박광현 선생님의 합작을 내셨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다가 어느 분의 알선으로 학생 교양지 ‘새소년’ 잡지에서 ‘소년 칭기즈칸’을 연재하게 된다. ‘소년 칭기즈칸’은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 중 한 작품이다. 천천히 보고 있으면 마치 미국의 대가가 그린 듯 섬세하고 선이 간결한 것이 빈틈이 없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대개 잡지에서 연재된 작품을 단행본으로 내지만, 단행본이 되어 나온 작품을 다시 잡지사에 연재한다는 것은 그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화장실도 재래식인 구 조선 민주당 당사로 사용했던 건물을 얻어 작업하게 된다. 옛날 칭기즈칸 원고를 가위로 오려서 다시 잡지 규격에 맞게 편집하고, 옛 원고가 붙여진 원고 위의 빈틈을 문하생이 다시 채워넣어 잡지사에 갖다 주고 원고료를 받아 쓰고는 하셨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연재가 끝나면서 다시 수입이 끊어지게 된다. 선생님은 이 고생 속에서 늘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황금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박 선생님은 만화 황금 시절의 재건을 위해 너무나 위험한 도전을 하게 된다.

 63. 꿈을 좇는 불나방

 선생님은 계획을 하나 세우셨다. 그것은 잡지를 세 가지 정도 출간하고, 또 연재된 작품을 단행본으로 만들고, 모든 책을 직접 인쇄해서 그야말로 황금 시절과 같은 규모로 만화를 제작하고 보급, 다시 만화 붐을 일으켜 황금 시절을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계획은 거창했지만, 자본을 댈 기업이 나서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신촌 대여점 만화 출판사들이 연합해 ‘합동’이라는 거대한 출판 그룹을 만들어 전국의 대여점들과 계약을 맺어 그 외의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책들은 못 받게 하는 독점 체제를 굳히고 있을 때였다.

 즉 미국의 신디케이트(syndicate)같은 조직이다. 지금 사회에서는 어림없지만, 그때는 그 체계에 많은 작가와 출판사가 피해를 봤다. 그러니 웬만한 기업들은 신촌의 ‘합동’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선뜻 투자를 꺼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택을 팔아 자본을 마련하신다. 이 과정에서 사모님은 만류했지만, 박 선생님은 사모님의 의사를 무시하고 뜻을 이루신다. 집을 판 돈으로 인쇄기계를 구입하고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모집했다. 또 잡지 세 가지를 출간하기 위해 유명 만화가 세 분을 스카웃해 각각 한 잡지씩 편집장을 보게 했다.

 그러나 편집 일이 순탄치 않았다. 옛날과 같은 실력 있는 작가를 구하기 힘들었다. 쓸만한 작가들은 ‘합동’에 전속으로 묶여 있었고, 찾아오는 작가들은 수준 이하이다. 그래서 일본 잡지 중 재미있는 작품을 추려 출간하기로 한다.

 그 시절은 일본 만화를 마음대로 복사해 사용해도 우리나라에서 이러쿵저러쿵할 뿐이지, 일본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던 시절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잡지가 한 권 만들어졌는데, 그 잡지 이름을 ‘백마’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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