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차일까요?
세대차일까요?
  • 김루어
  • 승인 2014.02.27 19:47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야흐로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다음 주에 대학원에 입학하는 여조카가 있다. 그 아이에게 줄 입학선물을 사기 위하여 시내로 나갔다. 며칠 전에 있었던 대학졸업식에는 가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식 때나 가볼 요량으로. 어쩌면, 그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덜 보고 싶어서라고 하는 게 정직한 말일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 그 아이를 만나 대화라도 나누게 되면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기분이 떨떠름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아이를 어릴 때부터 이렇게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형제가 많으니 당연히 내게는 조카가 많다. 이 아이는 그 조카들 중 맏이다. 그래서인지 정을 많이 주었고 아이도 나를 많이 따랐다. 아이 부모가 결혼 초에 사업이라고 한답시고 일을 벌였다가 파산하였을 때는 내 집에 일 년 이상 맡겨둔 적도 있었다. 그러다 아이 부모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게 된 후로 만남이 뜸해졌다, 집안행사나 명절 때나 만나는 정도로.
 이 아이가 나를, 우리 형제를 처음 실망시킨 것은 대학진학 때다. 아이 부모가 자식 둘 때문에 산다고 할 정도로 자식들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아이가 받아온 성적은 가까운 대도시 4년제 대학진학이 어려운 점수였다. 그 부모는 전문대 진학을 권했지만 아이는 중소도시 4년제를 고집했다, 2년제 나와서는 사람 대접받지 못한다며. 한심한 논리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희망이었다. 그네들 형편으로서는 타지방 유학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던 것이다, 젊을 때 졌던 빚이 아직도 그네들을 따라다니고 있어서.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결국은 아이 희망처럼 되었다. 좀 떨떠름했지만 입학식 때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입학선물로는 책을 30여 권을 주문하여 택배로 미리 보냈다. 주로 학업에 필요한 어학사전류와 대학생이면 반드시 읽어야만 할 고전 반열에 든 명저들이었다. 자취집은 형제들이 힘을 모아 원룸을 전세로 얻어 주었고, 등록금도 돌아가며 한 번은 대주기로 묵계가 되었다. 그래도 조카에게 대학 생활이 쉽지는 않았을 터이다. 바로 밑에 연년생인 남동생이 다음 해에 대학진학을 했기에.
 그 뒤 조카에게 한번 가 본다는 게 마음 같지만 않아 찾아간 게 대학 2년을 마칠 무렵이었다. 처녀애답게 집안은 정갈했다. 그런데 서가에는 전공서 몇 권과 내가 선물한 책이 전부였다. 책장을 넘겨보니 읽은 흔적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옷장에는 캐주얼 정장 비즈니스 스타일로 칸을 구분해놓은 옷이 가득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공부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물었다. 내가 준 책은 읽었니? 에고, 요즘 저런 고리타분한 칸트나 니체 셰익스피어나 V. 울프 같은 책을 누가 읽어요? 그 시간에 취업준비나 하지! 
 지금도 그 순간을 돌이키면 어이가 없다. 그때 호되게 꾸짖으려다가 문득,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주눅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삼켰다. 그랬다, 아이는 환경이 어려웠다. 형제들이 힘 되는 만큼 도왔지만 아이 부모는 형편이 쉽지가 않았던 모양으로 조카가 졸업반이 되어야 할 해 봄에 휴학계를 내야만 했던 것이다. 아이는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일 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복학을 하게 되었을 때 농산물값이 좀 나아졌다, 그 부모가 네가 번 돈은 네가 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아이는 자신이 번 돈을 그야말로 자신만을 위해 썼다, 라식비용과 옷과 악세서리를 사는 데에, 여자는 외모가 돋보여야 대접받는다는 대접론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하지만,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였다. 눈은 약한 근시였을 뿐이고 옷은 정장만 하더라도 여러 벌인 것을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 관심은 타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느냐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옷이나 악세서리도 메이커제품이어야만 했다.
 다른 젊은이들 생각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내게는 조카가 많다. 그들 대개가 대학생이거나 군대에 가 있는 20대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명절 때, 조카들에게 독서와 외모를 주제로 토론을 유도해 보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여조카와 비슷한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즉, 취업준비하기도 바쁜데 문학류나 사상류같은 인문서를 읽는데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고, 형편이 된다면 성형으로 외모를 바꾸고 메이커제품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의견이.
 올 들어서도 이 조카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조카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만 되는 형편이었다. 그 동생이 2년 전에, 누나 졸업하고 취업한다는 전제하에 휴학 입대하여 며칠 뒤면 제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카는 취업에 실패했다. 능력보다 눈이 높았던 탓이 크다. 하지만 조카는 눈을 낮춰 취업하면 사람대접 받지 못한다며 대학원 진학을 주장하여 그 부모와 커다란 충돌을 빚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결국은 그 부모가 졌다.
 나는 지금 가방가게 안에 있다. 요즘 아이들은 선물도 먼저 요구를, 아니, 어른이 선물로 뭘 사줄까를 묻는 것이 매너란다. 지난 설에 나는 조카에게 입학선물로 가방을 사주기로 했다. 그런데 가방가격이, 요즘 아이들 말로, 장난이 아니다. 대학원생도 학생이니 튼튼하고 실용적인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기준에 따라 골라 계산대로 가다 문득 집을 나올 때 내 아이가 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요즘  우리 또래는 엄마 생각과는 달라, 이왕 선물 할거면… 들고 있던 가방을 놓고 명품코너로 갔다. 그런데, 기분은 왜 그렇게 씁쓸한지…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hong 2014-03-07 10:42:35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2만5천원짜리 가방을 사고서는 이쁘지?하며
기분좋아하던
우리딸한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아침이예요..ㅎ

임종관 2014-03-07 07:44:20
요즘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거 우리 때에 요구하는 것과 거리가 많군요
한마디로 헐~~입니다

요즘 미세 먼지 때문에 목감기가 심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효원 2014-03-05 12:16:26
어쩔수 없는 현실의 존재감입니다
인문학의 힘을 빌린다면 성찰로서 그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대 공감합니다.

최연지 2014-03-03 00:33:57
문득 뵙고시퍼서 다녀갑니다
바람이시원하게 불어주는 봄이왔어요
건강하세요.

강대선 2014-02-28 14:30:54
조카님을 뭐라할 수 없는 사회.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외모지상주의와 학력인플레 현상까지
모범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자화상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옮겨간 것은 아닌지
물질적인, 보이는, 외면적인 것들로
우리의 삶이 잠식 당한 것은 아닌지..
시인님의 글을 읽고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건강하시길요
그리고 이 시대의 청년들도
건강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