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3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26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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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78)
 외국 여인이 타국에서 남편 없이 수절한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이 철이 들 때까지는 있어줬으면 하고 간청했지만, 결국 며느리는 일본으로 떠나고 장주사님에게는 어린 두 딸과 더 어린 두 손주까지 떠맡아 키우게 된다. 엎친 데 덮친다든가….

 1950년 나라에서 토지개혁이 있어 대지주들의 토지를 모두 소작인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법령에 장주사님도 농지를 나눠줘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아들을 버리고 떠난 며느리가 곱지 않았을 것이다. 그 며느리 자식까지도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두 손주 역시 늘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자기 집 유자를 먹고 싶지만 할아버지가 무서워 따 먹지 못하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 몰래 따 먹을 계획을 세우고 혼자 하기는 용기가 나지 않아 나와 같이 서리를 감행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장주사님은 사연이 참 많으신 분이었고 충정이 형도 가엾은 처지였다.

 59. 비운의 만화 대부, 박광현 선생님

 1955년쯤일까? 우리 집은 외가가 두 곳이었다. 한 곳은 어머니 친정집으로 하이면 덕호리에 있었고 또 다른 곳은 할머니의 친정집으로, 삼천포 서동 언덕에 할머니 남매 세 분과 사촌분들까지 모여 살고 있어서 정확히 몇 가정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었다. 설날이 되면 그 외가집 동네만 다녀도 세뱃돈을 주머니가 두툼해질 정도로 받고는 했다.

 할머니 남동생분의 집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분들의 신랑 중 한 분이 이것저것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그러다 한 번은 도서 대여 사업을 하시게 됐다.

 도서 대여 사업이란 점포에서 만화를 대여해주는 식이 아니고, 책을 들고 소비자를 직접 찾아다니는 식이었다. 그래서 친척인 우리 아버지 점포에 와서 자녀들에게 책을 읽히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친척이 와서 부탁하자 거절을 하지 못해 대여비를 그 친척분에게 내시고 나랑 형더러 틈나는 대로 그 친척분 점포에 가서 책을 골라 보라는 것이었다.

 형은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가. 그래서 나 혼자서 그분 점포에 갔다. 그분은 찾아온 나에게 책 20여 권을 내놓고 볼만한 책을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늘 보아온 학원 잡지를 먼저 고르고 또 이리저리 뒤지다가, 어느 책의 부록 같은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책은 ‘소년 칭기즈칸’으로 박광현 선생님의 만화책이었다.

 세로가 8㎝쯤, 가로가 15㎝쯤 되는 만화책으로 100쪽 가까운 책이었다. 내용은 영웅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인데, 그림이 깔끔한 것이 이따금 보아온 선생님의 그림 중 최고였다.

 ‘소년 칭기즈칸’은 박광현 선생님의 수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만화사의 걸작 중 하나다. 선생님은 1947년부터 만화를 그린 우리나라 초창기 만화계의 선각자이시다. 데뷔 후 신판 현대 소설류의 책에 ‘눈물 젖은 남매, 최후의 밀사’ 등으로 활동을 하셨고 1950년대가 되면서 ‘젊은 넋’, ‘푸른망토’, ‘정의의 쌍칼’ 등으로 작품을 이어오시다가 1955년 한국 만화 황금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길 수작들을 줄줄이 창작하신 분이시다.

 이 소년 칭기즈칸은 내가 만화가 오모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지만, 사실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명작의 이 책은 나중에 모 교양잡지에서 원고를 편집해 연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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