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45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20 0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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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74)
 55. 관아의 재판

 장주사님의 집 안 대문 옆에는 문간방이 있고, 이 방을 지나면 70평 정도의 넓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 옆 담 쪽으로는 방이 4~5개 정도 있는 기다란 별채가 있다. 이 별채는 일꾼이나 하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리고 마당 정면에서 바로 보면 고래등 같은 본채가 있다.

 본채 중앙에는 넓적한 마루가 있고 마루 양옆으로 방들이 있었고, 그 방에는 장주사님 식구들이 기거하고 있다. 집 모양이 조선시대 사또가 살면서 재판하는 관아를 연상하게 한다.

 나는 장주사님께 붙잡혀 마당을 지나 본채로 끌려갔다. 장주사님은 마루에 걸쳐 앉으시고, 나는 장주사님에게 손목이 잡혀 그 앞에 서있다. 방 밖에서 시끄러운 인기척이 나자, 방에 있던 장주사님 두 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두 따님은 충정이 형의 고모님이다. 그래서 나도 고모라고 부른다. 두 분 이름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작은고모는 진희 고모라 부르고. 한 분은 경희 고모라 부르겠다.

 진희 고모는 삼천포에서 나보다 4~6살 위의 아가씨 중 단연 최고의 미인이었다. 몇 년 후에는 부산에서 대학 시절 미스 경남 선발 대회에 참가해 진(?)을 차지하기도 했다.

 진희 고모는 나를 보더니 반가운 듯 “이 아-가 부진이 아니가, 니가 우리 집에 어찌 왔노” 한다. 그러나 나는 진희 고모 인사가 하나도 반갑지 않아 못 들은 척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진희 고모와 경희 고모는 자기 아버지와 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장주사님에게 “아부지, 어찌 된겁니다”하고 묻는 다. 그 질문에 장주사님은 “이노무 자식이 우리 집 유자를 따다가 나한테 걸렸다”라고 하신다. 나는 “내가 딴게 아니고 충정이 형이 땄다 말입니다”하고 억울한 듯 변명을 하지만, 장주사님은 “이놈이 거짓말하네, 나는 충정이를 보지도 못했다”고 하신다.

 나는 다시 “충정이 형은 할아버지 나오는 줄 알고 도망쳤거든요”라고 했다. 그러자 이제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을 한 고모들은 나에게 변호를 한다. 진희 고모는 “또 충정이가 사고를 쳤나 보네”라고 하더니 장주사님에게 “아부지 이 아-는 그런 짓을 할 아-가 아닙니다” 한다.

 사또 관아 같은 기와집, 넓은 대청마루에 장주사님이 걸치고 앉아 한 손은 내 팔을 꼭 잡고 있다. 나는 꼼짝 없이 죄인이 되어 문초를 받고 있고, 그 양 옆에는 두 고모가 내 손을 잡고 있는 장주사 손을 붙잡고 나를 변호하고 있다. 이 모습이 사또와 죄인, 두 고모는 이방들이다. 영락없이 관아에서 재판하는 모습이다.

 장주사님은 나를 계속 문책한다. “이 자식아. 빨리 땄다고 말 안할기가?” 나 “안 땄는데 왜 땄다고 말합니까” 장주사 “이놈 봐라 끝까지 아니라고 하네. 니가 장대 들고 있었잖아”나 “충정이 형이 도망가면서 나에게 주고 간 거란 말입니다” 진희 고모 “아- 말이 맞을 겁니다. 충정이가 또 잘못한 겁니다” 장주사 “니가 어떻게 그리 잘아노” 진희 고모 “이 아ㅡ는 로타리 동네 아ㅡ입니다” 그 말뜻은 로타리 동네는 생활 수준이 높아 남의집 서리는 안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장주사님은 내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진희 고모 “이 아-는 교회 다니는 아- 입니다” 교회 다닌다면 착하기 때문에 유자 도적은 안 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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