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4:49 (목)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17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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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72)
 53. 숙적, 천석꾼 할아버지와 골목대장

 우리 골목대장 패들은 노산으로 원정을 자주 가고는 했다. 노산은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동산이고, 또 그곳에는 잔디가 좋은 묘가 있어 뛰어 놀기가 좋았다. 여름에는 이곳 갯바위 끝에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

 우리 동네에서 노산 쪽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큰 마당이 있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사나운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평화로운 삼천포시 시내, 그 당시는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묶어놓고 키우지 않았고, 또 집집마다 대문에 열어 놓고 살았다. 어느날 우리 팀은 노산으로 가기 위해 떠들썩한 소리를 내면서 이 진돗개를 키우는 집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집 진돗개가 갑자기 집안에서 ‘으르릉’ 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와 우리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급하게 도망을 쳐서 위기를 모면했다. 하마터면 한 두 아이는 엉덩이를 물릴 뻔 했다.

 그 후부터 이 진돗개는 우리 팀이 자기 집 앞을 지날때 마다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는 했다. 한 번은 영수가 엉덩이를 물렸는데 다행이 살점은 상하지 않고 옷만 찢어지는 변도 당했다. 이 진돗개는 어른들이나 다른 동네 아이들이 아무리 지나가도 구경만 하고는 하는데, 우리 팀은 어떻게 보고 아는지 꼭 ‘으르릉’ 거리며 뛰쳐나와 우리의 혼줄을 빼놓고는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집을 지날 적에는 살금살금 오리다리로 앞까지 와서는 대문을 지날 무렵에 큰 소리로 힘을 합쳐 “진도!”하고 고함을 질러 놓고 불이 나게 도망을 쳤다.

 그러면 개는 멋 모르고 대가리를 두 앞발에 뭍고 눈을 반쯤 감은 채 꾸벅거리고 있다가 우리의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 귀가 쫑긋 서고, 눈이 동그렇게 되고, 머리가 하늘로 치솟다가 이내 우리를 향해 ‘으르릉’ 하면서 대문 밖으로 뛰쳐나온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리면 엉덩이 살점이 한 주먹 떨어져 나갈 판이다. 죽을 힘을 다해 50m 가까이 도망가면 그때서야 진돗개는 자기 영역 밖의 땅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 순간이 얼마나 스릴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온통 얼굴이 땀범벅이지만, 한바탕 스릴을 맛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들 했다.

 우리는 또 다음번 노산으로 갈 적에도 이 진돗개 집 앞에서 진도와 한바탕 추격전을 벌리고 했다. 골목대장 팀과 이 진돗개는 서로가 숙적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돗개 말고도 숙적이 생겼고, 이 숙적과 쫓기고 쫓는 사이가 되었다. 나와 숙적 관계가 된 것은 개가 아니고 70세 정도 나이드신 할아버지다. 이 할아버지는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고 그 당시에 10년 전 사천 군에서 제일 부자이셨던 천석꾼 장주사 어른이다.

 천석꾼이라는 뜻은 자기 소유의 논에서 매년 소출이 쌀 천석이 난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보통 논 한 마지기 661㎡에서 2석이 나오는 데, 그것으로 따지면 천석은 논이 500마지기가 있어야 한다. 논 500마지는 평수로 10만 평이니 어머어마한 재산이었다.

 이 천석꾼 할아버지 장주사 어른께는 아들하나에 딸이 둘있고, 또 죽은 큰 아들 밑으로 충국이, 충정, 두 손주가 있다.

 충국이 형은 나보다 세 살이나 위라 나는 상대가 안됐다. 충정이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초등학교를 일년 일찍 입학해 두 살 위인 나의 친형 화조형과 초등학교 동기생이다. 그래서 나는 충정이 형과 한 살 차이였지만 평생 형으로 모시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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