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0:2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10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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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67)
 어느 날 일본 청년이 조선인 처녀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한 대 때려 버렸다. 그래서 또 경찰서에 끌려가게 된다. 일본 순사들은 아저씨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고춧가루 물을 넣기도 하고, 옷을 벗겨 채찍으로 등을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저씨는 조선 처녀를 욕보인 녀석을 멋있게 한 대 쳐버린 대가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저씨는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다. 그때 일본 순사들은 미련한 녀석이 자꾸 말썽을 부리니 아저씨를 남양 전쟁터로 보내려 군 입대 서류를 만들었다. 순사들은 아저씨의 손을 밧줄로 묶고, 묶은 밧줄을 큰 기동에다 매 놓았는데, 아저씨는 자기를 군에 입대시켜 먼 남쪽으로 보낸다는 것을 눈치채자 그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손에 묶은 밧줄을 끊고 도망쳐 나왔다. 순사들은 삼천포 시내를 다 뒤져서 아저씨를 다시 잡아 와서는 이번엔 연락선과 부둣가 사이를 묶는 쇠줄을 가지고 와서 단단한 말뚝에 묶어 놓았다. 영락없이 징병에 끌려갈 형편이었다.

 그 당시 일본군은 동남아에서 미국과 전쟁을 하고, 만주에서는 소련군과 싸우고 있는 때라 군인과 물자가 모자랐다. 또 전쟁은 일본군이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어서 조선 청년들에게 작은 건덕지만 있다면 트집을 잡아 강제징병을 보냈다. 끌려간 청년들은 죽거나 소식이 끊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저씨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한목숨 바칠 정신으로 군에 입대하겠지만, 남의 나라의 전쟁에 끌려가서 죽는다는 것은 개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가 아니라면 영영 도망을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저씨는 조사를 받던 중에 있는 힘을 다해 쇠줄을 끊어 버렸고 이 광경을 보고 일본 순사와 형사가 놀라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경찰서를 빠져나와 도망을 쳤다.

 동네 사람들은 이때 쇠줄을 끊었다고 하여 별명을 쇠줄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아저씨가 도망을 치자 정신을 차린 고등계 형사와 순사들은 아저씨를 추격했다.

 48. 은혜 입은 아저씨

 한참 도망가던 아저씨는 박용도 아저씨 집의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잠을 자다 그 소리에 놀라 일어난 박용도 아저씨는 덩치 큰 남자가 집 뒤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람이 쇠줄이 아저씨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박용도 아저씨가 방 밖으로 나오자, 곧이어 순사들이 권총과 일본도를 들고 들이닥쳤다. 박용도 아저씨는 그때 일본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고, 순사들은 그를 알아보고 약간의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이내 “방금 이 집에 뛰어든 놈이 어디 있소”하고 물었다. 그때 아저씨는 “그 사람은 방금 저쪽 담을 넘어 도망을 갔소”하고 담을 가리키면서 거짓말을 했다. 곧장 순사들은 대문을 나가 담 너머 골목길로 달려갔다.

 순사들이 집을 빠져나가자, 박용도 아저씨는 집 뒤쪽으로 가서 쇠줄이 아저씨를 찾았다. 쇠줄이 아저씨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순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박용도 아저씨는 “순사들이 당신을 찾지 못하면 다시 이쪽으로 몰려올 것이니 나를 따라오시오”하고선 쇠줄이 아저씨를 아무도 찾지 못하는 자기집 지하실 깊숙이 숨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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