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2:18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0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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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65)
 요즈음은 그런 일이 생기면 ‘판권 침해’라며 법적으로 시비를 걸어오겠지만, 그 옛날에는 한바탕 화풀이로 그 대가를 받고 했으니 참 순진했던 세대였다고 볼 수 있다.

 김종래 선생님은 초기 그런 수모를 겪어가면서 특유한 화풍을 완성하고 크게 성공을 거두셨다.

 45. 사라져 버린 합본 ‘앵무새 왕자’ 90쪽

 나와 김종래 선생님의 한 작품에 대한 황당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그때가 1975~6년쯤 되었을까.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 ‘앵무새 왕자’가 2부까지 나오면서 히트를 치고 슬슬 마무리하는 시기였다. 나는 무슨 일 때문에 신촌에 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신촌 만화 본거지 진영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 들린 적이 있었다.

 그때 진영 출판사는 인쇄소까지 갖추고 있는 최고의 만화 인쇄소 겸 출판사이고, 출판사의 이영래 회장은 신촌 일대에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잘 아는 진영 인쇄소 직원 한 분이 나에게 반가운 손님에게 박카스를 건네주는 식으로 가볍게 김종래 선생님의 작품 ‘앵무새 왕자’ 한 편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 원고는 100쪽 정도로 가늘고 깨끗한 선으로 그려진 만화체였다. 나는 그 원고를 잘 간직 했다가 다른 만화가들이 내 화실에 찾아 오면 자랑으로 보여주곤 했고, 모두 부러워하면서 잘 그려진 원고에 감탄하곤 했다. 그 뒤 나는 고향 삼천포에 1년간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럭저럭 1980년대가 된 것이다.

 그동안 김종래 선생님은 몸에 지병도 있으시고, 또 급변하는 만화계에 적응을 못 하셨는지 창작활동이 뜸해진 무렵이었다. 그래선지 출판사에서 ‘앵무새 왕자’의 원고를 합본으로 2편~3편 정도를 만들었다. 나는 어느 출판사에서 갔다가 그곳 테이블에 ‘앵무새 왕자’ 합본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한 편이 3~4백 쪽이나 되는 대작인 이 책은 합본이어서 그런지 더욱 품위가 있어 보였다.

 나는 두툼한 ‘앵무새 왕자’ 합본 책을 펼쳐 보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소장하던 원고의 내용이 나올 장면에서 딱 그 내용만 빠져 있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모을 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원고를 보관 창고에서 찾을 길이 없어 그냥 그 쪽수가 없는 상태로 책을 만든 것이었다. 박카스 정도의 가벼운 선물 하듯 건네준 원고 한 권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누구의 탓일까. 첫 번째 잘못은 나에게 그 원고를 준 직원이 잘못이고, 두 번째는 관리를 소홀히 한 출판사 측에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지만 괜히 세 번째 책임이 있는 마냥 마음이 무거웠다.

 출판사에서 그 원고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에게 전갈을 주었다면 나는 천리를 마다치 않고 가져다주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지금 ‘앵무새 왕자’ 합본을 소장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사라진 90쪽이 없어 매우 아쉬워했을 것이다. 또 독자들은 이 황당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면 웃을까, 화를 낼까 궁금하다. 그 이후 세월이 흘렀고 변화무상한 내 과거사에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는 통에 그 원고는 다시 나에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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