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04:01 (토)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03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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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62)
 42. 만화가 김종래 선생님

 1955년 우리동네에서 제일 큰 건물은 농업은행이었다. 은행 건물 뒤에는 지점장님이 기거하시는 사택이 있고 그 뒤로는 넓은 뒷마당과 오래된 창고가 있었다. 사택에는 지점장님 부부와 두 아들이 살았다. 첫째 아들은 나보다 3~4살 많아서 같이 놀지는 않았지만, 둘째 아들 경권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로 우리 팀의 멤버였다.

 이 집 사모님은 나랑 같은 교회에 다녀서인지 내가 아이들과 은행 뒷마당에서 놀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그 뒷마당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은행나무가 있었고 더 안쪽에는 두 가지가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아담한 감나무가 있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인데 길 건너 삼천포초등학교에 있는 수나무와 짝을 이뤄 가을만 되면 굵직한 은행 열매들이 열리고 또 땅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우리는 은행 열매가 냄새나서 싫기도 했지만 몸에 닿으면 옻이 옮는다 해서 땅에 떨어진 은행 알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곤 했다.

 또 감나무는 봄에는 꽃이 피는데 이 감꽃은 먹을 수도 있어 땅에 떨어진 것을 줍기도 하고 또 나무에 핀 꽃을 따 먹기도 했다. 늦은 여름이 되면 우리는 다 익지도 않는 감을 다 따먹어 버려서 이 나무에서는 제대로 익은 감은 보지 못했었다. 또 감벌레가 있는데 이 감벌레는 콩알만 하고 몸에 부드러운 털이 있었다. 이 털에 피부가 닿으면 독이 올라 벌에게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오르고 하여 감나무에 오를 적에는 조심을 했다.

 어느날 나는 그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경권이가 나에게 만화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그 책은 보통 대여점에서 보던 만화책과는 종이도 다르고 인쇄도 달라 신기했다.

 그 책은 바로 국방부에서 국민들에게 교육용으로 만든 홍보 만화 ‘붉은 땅’이었다. 화풍은 가는 선이 일정한 굵기로 그어졌는데 인물들은 또릿또릿하게 그린 삼등신 캐릭터였다. 내용은 어느 조용한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겪는 주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이야기로서 공산당들의 모순을 일깨워주는 사상 교육용이었다.

 또 신기한 것은 김종래라는 무명작가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더 신기했다. 나중에 한국의 만화 황금시대에 견인차 역할을 하신 세 분 (박기당, 박광현, 김종래) 중 한 분이셨다. 그리고 수개월쯤 지났을 때 경권이는 또 한 권의 만화책을 보여 줬는데 그 책도 저자가 김종래 선생님이었고, 책의 제목은 ‘복수의 칼’이었다. 복수의 칼은 쪽수가 30~40쪽밖에 안되는 대여점용 책이었다.

 책 한쪽은 해설이고 한쪽은 그림으로 두 컷 정도가 들어간 그림 소설풍의 만화책으로 화풍은 겹선을 복잡하게 사용한 삽화체였다.

 인상 깊었던 장면을 얘기해 보자면, 어느 지하실에서 주인공과 상대편의 싸움이 벌어진다. 상대는 긴 칼을 뽑아들고 주인공은 단도를 가지고 상대한다. 누가 보아도 주인공이 불리한 입장이다. 위기에 몰린 주인공은 단도를 거꾸로 들어 보인다.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상대는 놀라 뒤로 물러서면서 ‘다음 편에 계속…’으로 끝났다.

 ‘복수의 칼’은 ‘붉은 땅’과 같은 작가지만 그림체가 전혀 달라 신비스러웠다. 이 두 작품이 김종래 선생님의 데뷔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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