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참을 말없이 어느 자리에서 서성이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짧은 인생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삶을 배워가는 것이며, 그 하루에서 당신이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음을 가만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이동근 여행에세이 ‘너 1825일의 기록’ 발췌
차를 타고 가다가 멋진 풍경 앞에 나만의 생각들이 떠오르면 무릎 위를 받침대 삼아 노트를 올려놓고 써내려 가기 시작합니다. 기록들은 대부분 그 당시 느낌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 써먹지는 못할 그런 문장임은 틀림없습니다.
3년 정도, 3권 정도의 노트를 썼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고 종이 재질은 좋지 않은 그런 노트이지요. 그래서 도서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치하더라도 누가 가져갈 걱정도 없었습니다. 내 지나쳐온 시간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소중한 노트를 전라도 취재 도중 잃어버렸습니다. 그때의 심정이란… 여행에서 돌아온 일주일 동안, 그저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여행용으로 항상 메고 다녔던 백팩 중, 물건도 많이 들어가고, 잘 잃어버리지 않는 구조에 튼튼하고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기에 방심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따라 난 항상 가방의 중간 부분에 넣어 두었던 노트를 제일 앞쪽 지퍼 쪽에 넣어뒀어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후, 한참을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있다가 짐을 정리하며 노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어디서 흘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체념하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노트를 우연히 주운 어느 행인이 휴지통에는 집어넣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훔쳐보기라도 했다면, 웃기고 유치하더라도 노트를 쓰던 주인의 마음이 이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나에겐 작은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 본다는 것은 손해가 되는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 쓰라린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조금 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애정을 쏟게 되니까요.
애정이라는 단어 안에는 ‘아끼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소비되는 물건인 경우에는 쓰지 않고 보관하는 것보다 그 목적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애정을 쏟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조금 더 관심 두기, 조금 더 기다리기, 조금 더 참기, 조금 더 어루만지기, 조금 더 믿기이지요.
우리는 경험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그냥 흔한 노트 하나 잃어버린 일에도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을 깨우치며 살아가고 있듯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