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2.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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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61)
 그리고 그 무렵 내가 사는 집과 전에 살던 집 중간에 긴 골목길이 있는데 그곳에는 나보다 3살 위의 홍열이 형이 살았다.

 그 형은 어디서 구했는지 대여점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만화책을 열 권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형과 책을 바꿔 보기 위해 궁리 끝에 가짜 만화책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하얀 도화지를 사와서 스토리를 짜고 검은 잉크로 그림을 그려서 20쪽 가까운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화책을 완성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종이 재질이 틀리고, 표지에 채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로 형이 책을 살피며 “이 책은 진짜 책과 종이가 다르다”하고 말하면 나는 “이 책은 고급책이라 종이가 좋다”고 답하고 형이 “왜 표지에 색이 없지”하고 물으면 나는 “책이 너무 잘 팔려 인쇄소에서 채색할 시간이 없었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면 홍열이 형은 내 말에 속아 책을 바꿔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짜 만화책을 들고 홍열이 형 집을 찾아갔다. 마침 형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곧장 홍열이 형에게 내가 만든 만화책을 보이며 “형, 내가 새 만화책 구했어. 바꿔보기 하자”라고 말했더니, 형이 하는 말이 “그 책은 네가 만든 가짜구나”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나는 너무 김이 빠졌다. 그 만화책을 만들려고 3일이나 걸렸는데, 그리고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답을 하려 멋있는 답도 생각해 놨는데 바로 가짜라는 것을 들키고 말다니.

 실망하고 있는 나에게 홍열이 형은 내가 만든 만화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하는 말이 “참 잘 그렸다. 너 만화가 해도 되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혹 가짜라도 만화책을 바꿔 줄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홍열이 형은 “이 책은 너무 귀해서 보통 만화 한 권을 보여 줘서는 안된다. 내 만화책을 모두 보여줘야 그 가치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혹시나 한 권이라도 바꿔보기를 해주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자기가 가진 만화책 모두를 바꿔보기 하겠다니….

 홍열이 형은 나에게 만화책을 한 권 빌려주고, 내가 보고 다시 가져오면 또 한 권을 보여주며 자기가 가진 모든 책을 나에게 보여줬다.

 그때 본 만화책은 서봉재 선생님의 ‘리터엉 탐정’도 있었다. 그리고 한상학 선생님의 ‘로이타군’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장선교 선생님의 작품도 있었던 것 같다. 장선교 선생님은 괴기스러운 만화를 그리는 분으로 아직도 살아계신다. 또 그 무렵에 인기가 많았던 일본 번역물 ‘황금 마왕’을 보았는데, 그 책이 혹시 그때 홍열이 형의 책이 아닌가 추리해 본다.

 홍열이 형이 빌려줘 본 만화책이 열 권정도 였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에 남는 책은 서너 권밖에 안된다. 유난히 만화를 좋아하던 홍열이 형. 그분 말대로 나는 만화가가 됐고 형은 1977년 정도에 한내 다리 건너기 전 시내 쪽의 자그마한 점포에서 만화 대여점을 하다가 만화대여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부산으로 이사를 갔었는데 그 후는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아마 잘 살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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